기술이 되지 못하는 전공에 대하여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가는 요즘이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유튜브 메인에서도 종종 심리학을 언급하는 영상의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다행히도 <치킨 심리학> 정도의 돌연변이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으나, 불행히도 <치킨 심리테스트>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바야흐로 대(大) 심리의 시대. 그 와중에 무려 심리'학'을 '전공'씩이나 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올해로 서른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개띠 또래의 초거대 아젠다, '그거 하면 돈 잘 벌어?'와도 맞닿아 있다.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은 얼마나 벌고 있을까. 벌고 있긴 할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들려오는 풍문에는 연구소, 리서치, 상담사, 마케팅, 영업, 작가, 공무원.. 대학원생 우리는 소위 전공을 '살린'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나뉜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공을 죽인 적은 없다. 다만 죽어가는 전공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자조적인 표현일 뿐. 전공이 직무를 관통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대다수의 졸업자들, 그들은 정말 그들의 전공을 죽게 내버려 둔 것일까. 우리는 왜 전공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을 하게 되었는가.
특히 돈을 벌게 해주는 기술은 더더욱 아니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 전공을 '인생의 교양'으로 소개하곤 했다. 돈을 벌게 해주는 기술을 가진 자들 중에 이 교양까지 갖춘 분들이 큰돈을 버는 것은 종종 보았으나, 교양 하나만으로 자기 밥을 벌어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밥 한 끼 벌어다주지 못하는 교양에 몇 천만 원과 6년가량을 투자하고 있는가. 나는 심리학이 열매를 맺어주는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에는 철학이 있다. 철학은 '왜(Why)'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존재의 의의가 되고 근거가 된다. 근거라는 단어에서 '근'은 뿌리 근(根) 자를 쓴다. 근본이 되는 거점이라는 뜻이다. 철학이 없는 기술과 학문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와 같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수해를 입으면 쓰러진다. 그러나 철학이 견고한 나무는 굳건히, 크게 자랄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기업도 마찬가지다. 철학이 없으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지기 쉽지 않다.
철학이 뿌리를 내려주었다면, 열매를 맺는 것은 심리학의 역할이다. 모든 학문과 기술은 사람을 향해있다. 학문은 탐구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를 위한 보고서가 아닌,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는 얼마나 따분하고 무의미한가. 학문과 기술의 본질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되고 발전된다. 탐구된 지식, 개발된 기술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심리학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철학자들은 태양과 달, 천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과학자들은 일출과 일몰의 작동 원리와 주기를 밝혀냈다. 인간은 햇빛을 통해 비타민D를 합성하고,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 즉, 해가 떠 있을 때 활동하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임의로 수면 주기를 망가뜨릴 경우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해가 짧아지는 겨울에 유독 우울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었다.(A.K.A. 계절성 우울증)
기술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감사하게도, 생존을 위한 기술개발의 시대는 지났다. 현대의 건축물은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목재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학문과 기술은 최종 단계에 와서는 인간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접점에서 그것을 어떻게 인간과 만나게 할 것인지, 최후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심리학의 역할일 것이다. 심리학이 단순히 상담과 마음치료만을 위한 학문으로 치부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앞서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던 선후배, 동기들이 하는 일은 모두, 결국 사람을 향해있다. 그들도 알게 모르게 자신의 20대 절반가량을 투자한 심리학을 써먹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기술과 서비스가 사람과 만나는 지점.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으리라 믿는다. 예술 역시 심리학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처음 만든 명함이 문화예술 기획자일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이 얼마나 벌어다 주는가 하는 문제는..
차차 증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