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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에딧쓴 Jul 03. 2019

짬짜면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결정장애, 극복에만 급급하기 전에 깊게 한 번 들여다보자.

주문하시겠습니까?


 참으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초침의 간격이 넓어지고 입술이 마른다. 침묵은 실례라고 생각되어 '어...' 하는 의미 없는 추임새로 대화의 틈을 메운다. 이번에도 답은 정해져 있다.


"조금만 있다가 주문할게요.."


머쓱하게 웃으며 메뉴판에 다시 코를 박는 우리는 결정장애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정답이 없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우리를 괴롭게 했던 악한 자들은, 당사자들이 눈 앞에 있는 순간에도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심지어 당사자인 엄마, 아빠조차도. 그것은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최적의 놀이였다. (잔꾀를 부릴 줄 아는 아버지들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기도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부모님의 진부한 대결이 끝나면, 다음은 오랜 기간 우리를 괴롭혔던 세기의 대결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짜장면 vs 짬뽕이다.


 배달음식 어플리케이션은 전화통화에 대한 두려움을 종식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낯선 중국집 사장님과 목소리를 나누기 위해 긴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대단한 서비스조차도, 우리가 결정장애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은  해결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히어로처럼 등장한 그들은 우리에게 궁극의 해답을 주는 듯했다. 바로 혼합 메뉴, 짬짜면을 필두로 한  그들이다.


Avengers!! Assemble. (친구들 모여라)


 이들의 등장으로 지구는 평화를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결정장애라는 빌런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짬짜면은 <짬뽕 vs 짜장면>의 완벽한 대안이 아니라, <짬뽕 vs 짜장면 vs 짬짜면>의 새로운 선택지가 되었다. 짬짜면을 먹자니 짬뽕과 짜장면 중 어느 한쪽도 양껏 먹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닥이 솟아오른 만큼, 단일 메뉴보다 혼합 메뉴의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삼파전으로 달라졌을 뿐, 우리는 주문을 기다리는 이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것을 결정장애라고 부르며 '장애'라는 핑계 뒤에 숨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것'을 정말 장애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현대 이상심리학의 관점에서, 정신장애란 특정한 이상행동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정의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획일화된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하는 학자마다 다양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동의하는 보편적인 기준은 존재한다.


1. 개인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방해하는가

2. 주관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가

3. 문화적 규범과 상충하는가

4. 통계적으로, 평균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위의 기준을 보면 '결정장애가 정말 정신장애였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매우 정상범위에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이상심리학을 수강하는 심리학과 학생들은 정신장애 유형을 배우며, 매주 자신이 오늘 배운 유형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학생들과 당신, 모두 매우 정상이다.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정신장애 분류체계는 위의 기준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바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간하는「세계질병분류(ICD)」와, 미국정신의학회(APA)에서 발간하는「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이다. ICD는 2018년에 11차 개정판을 공포했으며(게임중독이 장애 분류로 추가되었다.) DSM은 2013년에 5차 개정판을 내놓았다. 결정장애라는 분류체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말 허상일까?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매일을 점심메뉴 선택으로 고통받고 있다. 엄마와 아빠에 대한 선호도 조사처럼, 짜장 vs 짬뽕에도, 점심메뉴에도 정답은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면 된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더 정확히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때를 떠올려보자. 적어도 10년 이상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헤매는 사람이 허다하다. 설령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사람일지라도,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는 망설이기 마련이다. 선택지들의 장단점이나, 선택지들 간의 격차가 명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신의 지향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족할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 우리의 지향점은 둘로 나뉜다. 만족할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동시에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 무의식적으로 두 가지를 고려하게 된다. 


1. 내가 선택한 것이 나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줄 것인가.

2. 내가 포기한 것은 나를 얼마나 후회하게 할 것인가.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려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리면 생각을 멈춰버린다.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번아웃도 이와 비슷한 원리다. 운전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치를 떠는 병목현상과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개인이 한 번에(=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선 사고를 하게 되면 좁은 통로에서 너무 많은 사고처리를 하느라 속도가 느려진다.


 우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가 아니라, 만족하는 것과 후회하지 않는 것 중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말이다. 만족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선택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된다. 후회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포기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대상을 통해 만족을 느끼며, 포기한 대상을 통해 후회를 느낀다.(이는 동기와 관련이 있다. 다른 글을 통해 다룰 예정이다.) 짜장을 택한 당신은 다른 이가 먹는 짬뽕을 보며 '역시 짬뽕을 먹지 않길 잘했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만족감은 당신이 선택한 짜장면이 역시나 당신 입에 맞을 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짬뽕을 선택한 당신은 자신의 짬뽕을 먹으며 '역시 짜장을 먹을걸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후회하는 지점은 다른 이의 짜장면(당신이 포기한)이 더 맛있어 보일 때이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결정장애가 불편한 이유는 선택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선택지 간의 여러 가지 측면을 검토하면서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면, 결정장애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 좁은 도로에서 차가 몰렸을 때, 가장 빨리 체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순서를 정해주는 것이다. 단순히 진입한 순서대로 통과시키는 방법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하며, 전체의 처리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소 대기시간이 생기는 개인이 발생하더라도, 전체의 흐름과 중요도를 고려해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당신은 가지는 사람인가, 버리는 사람인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가지는 사람이라면, 선택지들이 당신에게 줄 만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 된다. 버리는 사람이라면, 버리는 선택지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후회를 고려해보면 된다. 누가 결정장애 아니랄까봐, 만족과 후회 예방 사이에서 다시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번 선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다른 선택을 위한 도구일 뿐 선택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무엇을 취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버릴 것인가. 짜장면의 달콤함? 짬뽕의 얼큰함? 아직도 결정할 수 없다면.. 오늘까지만 짬짜면에 머물러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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