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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에딧쓴 Feb 14. 2022

스키장을 왜 돈 내고 가?

경험의 가성비를 책정하는 법

가장 최근에 갔던 스키장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리프트를 몇 번 탔는지 기억하는가?


스키장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굳이 줄 서서 오르는 곳. 심지어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시간에 비해 스키나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시간이 훨씬 짧게 느껴지는 곳. 그들에게 스키장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경험은 없다. 심지어 당신은 지난번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몇 번 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비해 스키장의 경험은 꽤 비싼 편이다. 리프트권, 장비 렌탈, 교통비 등을 생각하면 하루의 취미생활을 위해 이만큼의 가격을 지불하는 레저는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이 오면 당신은 또다시 스키장을 찾을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즈..즐거워..!!


실제로, 슬로프를 내려온 횟수로 계산해보면 스키장의 가성비는 그리 좋지 못하다. 심지어 시간 단위로 구매한 리프트권은 떡볶이와 라면을 먹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물론, 떡볶이와 라면 값은 리프트권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심지어 리프트를 몇 번 탔는지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반복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슬로프를 내려오는 경험은 세 번째와 네 번째가 매우 유사하다. 유사한 경험을 각각 모두 기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직장인의 일주일이 백수일 때의 일주일보다 짧게 느껴지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지도 않는 경험을 왜 매년 구매하게 되는 것일까?


가성비의 기준이 잘못 선택되었다.


스키장 경험의 가성비는 슬로프를 탄 횟수로 측정해서는 안된다. 스키장은 슬로프 하강 횟수를 채우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키장에 가는 것은 순간의 감각 때문이다.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리프트권을 구매한다. 스키장 가성비의 기준은 가격 대비 '몇 번의 리프트를 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즐거웠는가'가 되어야 한다.


리프트를 몇 번 탔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보드를 타고 처음으로 S턴을 성공한 짜릿함은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는 절대 낼 수 없는 속도로 눈 위를 미끄러진 스릴은 기억에 남는다. 리프트 권을 구매하는 것은 최대한 많이 리프트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격 대비 리프트를 탄 횟수가 훌륭하다고 해서, 그해 겨울 스키장의 기억이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가장 행복했던 스키장의 경험은 스키를 타는 동안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리프트 권의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리프트권 구매를 저렴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좋은 경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키장을 운영사들은 이용 시간 도중에 정설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정설 작업을 하는 동안 방문객들은 슬로프를 이용할 수 없다. 이것은 리프트권의 시간당 이용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그러나, 정설 작업이 끝나면 더 매끄러운 보딩을 할 수 있다.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경험 디자인은 정설과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표면적인 상품 가격과 가성비만을 따져서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 자신이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을 경험의 참여자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원데이 클래스로 또 다른 예시를 떠올려볼 수 있다. 수강권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반지, 지갑 등의 결과물 개수를 늘리면 어떨까? 동일한 가격에 더 많은 결과물을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공방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 더 빡빡하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수강생들은 초보자일 것이므로, 각각 완성품의 퀄리티는 더 떨어지게 된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아무런 결과물을 가져가지 않는 티(TEA) 원데이 클래스 | 사진: 에덴파라다이스호텔


원데이 클래스 역시 '완성품을 산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제품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 접근은 조금 낫지만 아직 부족하다. 클래스의 목적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원데이 클래스는 기술 습득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지 않다. 평소엔 만져보기 힘든 장비로 나무를 사각거리는 경험, 같은 추억을 담은 기념품을 서로 선물하는 경험, 공방 선생님과 스승과 제자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는 경험. 이러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원데이 클래스의 질을 높여준다. 다시 말해, 수강권의 가성비를 높여준다.


'경험이 상품이 되는 경험 경제'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현대의 상품은 가격과 사용가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며, 모든 상품은 인간에게 경험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소비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소비를 떠올려보자. 그 소비는 왜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값을 지불한 대상은 무엇인가?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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