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완성은 당신에게 달렸다.
무서울 것이 없었던 신입생 시절, 당신의 단골 술집을 기억하는가? 대학시절이 없었다면, 그냥 자주 다녔던 주점도 괜찮다. 돌이켜보면 술맛이 참 좋았던 술집, 술맛이 참 좋았던 날이 있다. 제 아무리 대단한 맛집, 제 아무리 비싼 술을 마셔도 그 당시의 술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당시 생산된 참이슬과 지금 생산된 참이슬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에도.
술집마다 술맛이 다른 것은, 함께한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날의 이야깃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분이 달라서, 날씨가 달라서, 안주가 달라서. 같은 술이어도 다르게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좋았던 술자리들을 몇 개 떠올려보자. 모든 기억이 같은 안주를 먹고 있는가? 모든 기억이 같은 사람과 함께 했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좋았던 술자리의 기억, 좋았던 술자리 경험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었다.
좋은 경험 디자인은 고객을 참여자로 만든다. 참여자는 단순히 만들어진 경험(서비스, 상품, 무엇이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꺼이 그 경험에 뛰어들어, 주체적으로 경험을 완성해나간다. 술자리에서 제공받는 것은 시원한 소주, 잘 차려진 안주. 거기까지다. 사장님은 당신 테이블의 화젯거리를 주도하거나, 짠을 해야 하는 타이밍을 알려주지 않는다. 술상이 차려진 이후의 경험은 당신과, 마주 앉은 그가 함께 만들어갔다.
물론, 사장님들은 자신의 가게에서 최적의 경험을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잔을 얼려두어서 관자놀이까지 짜릿한 맥주를 제공하거나, 가격 대비 기가 막히는 크기의 계란말이를 내어주기도 한다.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거나, 때로는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그런 요소들은 당신의 술자리 경험을 좋게 만들어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해도,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술자리였다면 당시의 경험은 처참하게 기억되고 만다.
좋은 경험의 완성은 참여자가 만들어간다. 아무리 잘 짜여진 경험 디자인이더라도, 참여자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주점 사장님들은 자신의 가게에서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의 결에 따라, 가게를 조용하고 어둡게 유지하기도, 소란스럽고 활기 넘치는 음악을 틀기도 한다. 가게에 오는 손님을 기꺼이 참여자로 맞이하고, 좋은 경험을 만들어가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생소한 메뉴를 파는 맛집은 맛있게 먹는 법을 손님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기획자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유도하는 것.
술맛이 좋았던 그곳의 경험은 당신이 완성시켰다. 어쩌면 당시에 마주 앉은 그 사람이 완성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술맛이 좋았던 그 집의 술맛은 주류회사가 아니라 당신이 완성시켰다. 따라서, 당신의 인생 술집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삶에서 가장 맛있었던 술 한잔은, 내일이 될 수도, 어쩌면 오늘 일 수도, 지금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한 캔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다른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당신의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