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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에딧쓴 Feb 20. 2022

파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경험 기획자가 유럽을 여행한다면, 파리 편

혼자 다니는 여행은 심심하지만, 사색에 쓸 시간이 자유롭다. 파리 여행 당시에는 에펠탑의 아름다움에 함께 호들갑 떨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움보다는 이런저런 잡생각이 더 많이 떠올랐었다. 


파리에 있는 내내 흐리고 비가 왔다.


느린 파리


첫날은 공유 킥보드를 타고 다녔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많아 손바닥이 저릿했다. 비와 싸우느라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튿날엔 걸었다. 어제보다 느린 파리를 보고 싶어서. 킥보드로 가보지 못한 좁은 골목을 걷고, 계단을 올랐다. 랜드마크를 보러 바쁘게 돌아다녔던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느리게 걸으면 인스타그램 프레임 밖의 파리가 눈에 들어온다. 블록마다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여행할 당시에는 노란 조끼 시위로 뉴스가 떠들썩했다. 도로 통제로 텅 빈 거리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낮게 깔린 구름의 무게를 한 층 더해주었다. 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이 배치된 거리는 전운마저 감도는 듯했다.



마주 앉기, 나란히 앉기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1층 거리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국에 비해 야외 자리가 많다. 좌석의 배치가 특이한데, 의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사람들 역시 같은 방향을 보고 앉은 테이블이 많다. 이로 인해, 마주 앉는 것이 보통인 (한국과 같은)문화권과 달라지는 것이 많다. 대화의 방향, 관계의 형태, 시선의 거리 등등. 대부분의 대화가 너와 나를 향해있기보다, 같은 대상을 향해있다. 상대를 마주하기보다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시선은 너와 나 사이에 갇혀있지 않고 더 먼 곳까지 닿는다. 단순히 좌석 배치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미묘한 문화 차이가 좌석 배치를 통해서도 드러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실제로 앞에 앉은 상대와 옆에 앉은 상대에게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은 다르다. 



관광 상품이 된 도시의 이름


파리라는 도시의 이름은 그 자체로 관광상품이다. 상품이 되는 것과 브랜드가 되는 것은 다르다. 많은 거리 상점을 들어갔지만 'PARIS',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이상의 기념품은 없었다. 한참이 지난 지금은 골목길 보드게임 전문점에서 팔던 수십 가지 모양의 주사위와 체스 말이 더 기억에 남는다. 기념을 위한 기념품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기념품을 위한 기념품에는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브랜드가 된 도시의 이름은 베네치아 편을 쓰게 된다면 적어볼 예정.



우리는 지구촌 친구


도시를 완성시키는 것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걷다가 들어간 숙소 근처 파스타집의 서버는 유쾌했고, 옆자리 꼬마는 낯선 동양인에게 미소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좋았던 기억은 그 정도. 몸이 휘청일 정도로 팔을 잡아끄는 무뢰한을 셋이나 만났다. 한 명은 나에게 팔찌를 선물(물론 팁은 줘야 함)하겠다고 했고, 한 명은 술에 취한 채 비흡연자인 내게 라이터를 빌려달라며 질척였고, 한 명은 성매매를 하라고 팔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서야 팔을 놓아주었다. 살면서 남에게 소리를 지른, 몇 번 안 되는 기억의 절반은 파리에서였다.



거리악사


유럽을 여행하며 음악이 없어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이어폰을 꽂으면 그곳의 소리를 귀에 담지 못하므로, 이어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공간이 많았는데, 음악과 함께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파리는 그 욕심을 종종 충족해주었다. 랜드마크의 뒤편, 골목의 사거리, 인적이 많지 않은 뒷골목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거리악사가 있었다. 그들의 연주는 그나마 파리를 추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부재로 인한 아름다움


내가 겪은 파리는 낮보다 밤이 아름다웠다. 낮에는 없던 조명의 유희로 빛과 어둠의 대비가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있던 것의 부재도 크게 한몫을 한다. 신경질적인 클락션,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 관광객, 어떤 생물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변 무더기 등은 밤에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 <완벽한 타인>이 생각났다.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난 '낮'보다, 서로의 비밀이 감추어진 '밤'이, 적어도 겉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인다.


부재로 인해 아름다워지는 것에는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파리는 분명 아름다운 도시이고, 파리의 야경이 낭만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연인들이 가득한 대낮의 광장보다 인적이 드문 한 밤의 강변이 더 낭만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돌이켜보면 의아하다. 사람이 부재한 낭만이라니.


그때의 파리를 만든 것은 그곳의 사람들일까, 아니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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