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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10. 2018

그날, 나에겐 경쟁자가 없었다

누군가와 경쟁하고 싶지 않다면, 나와의 경쟁에서부터 이기면 된다

나에겐 경쟁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경쟁자가 없을 만큼 특출나서가 아니라 경쟁자를 만날 상황에 놓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형제, 자매끼리 경쟁을 한다고도 하지만 언니와는 워낙 가진 재능이 달라 경쟁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학교 다닐 적엔 성적이 평범했으니 삼엄한 경쟁에 시달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경쟁하는 일에는 관심도 없었고, 불가피하게 경쟁할 상황이 생기면 내가 불편해서 스리슬쩍 피했다.


그랬던 내가 경쟁자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사회에 나와서부터였다. 회사 면접을 보러 가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대기실에 열댓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엔 면접을 본 경험이 많지 않았는데, 준비한 멘트를 중얼중얼거리거나 말끔하게 다려진 정장 매무새를 고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망했구나' 싶었다. 나는 그에 비해 매우 프리하게 면접 준비를 하고 간 터였다. 당연히 면접은 망했다. 주변 사람들을 너무 많이 의식했기 때문이다. 질문이 들어올 것 같으면 내가 아닌 옆 사람한테 먼저 질문해줬으면 싶었고, 옆 사람의 당당한 목소리와 엄청난 스펙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다.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한 채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그 후로 면접이 잡히면 단단히 준비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모든 질문 리스트를 뽑아서 나를 잘 소개할 수 있는 스토리로 답변을 구성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멘트는 줄줄줄 외워두었다. 면접 볼 회사의 최신 뉴스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업무와 관련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은 키워드라도 섭렵했다.


그리고 보게 된 한 회사 면접에서 서류와 1차 면접을 통과한 후 임원 면접까지 보게 됐다. 나를 포함해 3명이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임원 면접은 생각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삼엄했다. 그날 면접은 특이하게도 누군가를 지목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놓고 아무나 대답하라는 식이었다. 나는 거의 모든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답했다. 이미 뽑아둔 질문 리스트의 질문들이었으니 머릿속으로 멘트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 없었다. 설사 내 답변이 비전문적이거나 오답이라 하더라도, 준비한 만큼 자신있게 대답했다. 내 뒷차례에 답변하는 지원자는 겹치는 내용을 대답할 수 없으니 아마 머리가 더 복잡했을 것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느라 더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최종 면접에서 합격했다. 그날 나에겐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경쟁하고 싶지 않다면, 나와의 경쟁에서부터 이기면 된다. 그날의 면접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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