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된 직장 상사와 14일간의 미국 여행 (7)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채 시작된
엉성한 출발
"전기 자전거 탈래, 일반 자전거 탈래?"
자전거로 금문교를 횡단하는 데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는 말에, 나는 춘천에 있는 남이섬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전기 자전거를 선택한다면 애초에 미국을 제대로 즐길 마음이 없는 거 아닌가? 나는 정말 전기 자전거 안 타도 괜찮겠냐는 지연님의 걱정에도 당당하게 '일반 자전거'를 외쳤다.
금문교 횡단을 애초에 우습게 생각했으니 자전거 안장 높이를 제대로 맞추지도 않았다. 몇 번 발 구르다 말 테니 조금 불편한 것은 무시해도 괜찮겠거니 한 것이다. 그런데 자전거를 너무 오랜만에 타서인지 내 자전거 타는 모양새가 영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게다가 막상 출발을 하고 보니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지 않아 차도로 다녀야 했는데, 함께 출발한 사람들과 무리를 지으면 그나마 안전할 듯싶어 어떻게든 무리를 쫓아 자전거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채 시작된 엉성한 출발. 나의 출발은 항상 그 모양이었다. 꽂히면 바로 달려들기부터 하는 나는 그렇게 출발했다가 몸 고생 마음고생한 일이 너무도 많았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시작했다면 좋았을걸 싶은 일들이 나이와 함께 쌓일수록 나의 성격은 즉흥적인 성격에서 계획적이고 신중한 성격으로 바뀌어갔다. 조심스러울수록 편안하고 안전했지만 새로운 출발은 더뎠다.
엉성한 출발 뒤 남은 것
날씨가 흐린 덕분에 덜 더운 것은 다행스러웠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아무리 발을 굴러도 자전거가 힘차게 나아가질 못했다. 지연님과 나는 중간중간 자전거를 세울 만한 곳이 보이면 자전거를 세우고 숨을 돌렸다. 하지만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는 말과 달리, 도통 금문교가 나타날 생각을 않으니 우리는 오랫동안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함께 출발했던 무리들이 사라진 건 오래전이었다.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지연님도 내 속도에 맞춰 달리기가 어려워졌고, 나 역시 보폭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지연님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설상가상 금문교에서는 양쪽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혀 자전거에서 떨어지고 발목이 긁혔다. 혼자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 결국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눈앞에 고속도로가 있었다. 분명 길이 하나였던 것 같은데 내가 정신을 놓고 다른 길로 왔다고 착각해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길이 좁아 자전거에 올라타는 순간 중심을 잃고 달려오는 차와 부딪쳐 죽을 것 같았다. 나를 쌩- 하고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미웠다.
그때, 반대편에서 나처럼 자전거를 질질 끌고 오는 지연님이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가 안 오니 결국 자전거를 끌고 뒤돌아온 것이다. 지연님을 보니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전기 자전거를 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지연님과 나는 이날 총 4시간 자전거를 타고 최악의 근육통을 앓았다. 도저히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을 수가 없을 만큼 다리가 저렸고, 열이 펄펄 끓는 것처럼 다리 전체가 뜨거웠다. 진통제를 먹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에도 다리 저림은 여전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미국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면 나는 자전거로 금문교를 횡단한 날을 꼽는다. 사실 자전거로 금문교를 횡단하게 된 건 한 여행책에서 추천한 코스였기 때문이었는데, 책에 '심한 근육통을 앓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경고 문구를 본 건 이미 횡단을 하고 돌아와서였다. 오랜만에 정말 나다운 엉성한 출발이었던 것이다.
나는 요즘 엉성한 출발을 연습하고 있다. 만약 내가 책의 경고 문구를 봤다면 자전거로 금문교를 횡단하는 것을 애초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경고 문구를 보지 않은 덕분에 엉성하게라도 출발을 했고 조금 죽을 것 같은 고비가 있긴 했지만 무엇이라도 보고 느끼고 넘어지고 돌아왔다. 이제 자전거로 금문교를 횡단하는 정도의 여행이 아니면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정도. 엉성한 출발은 몸 고생 마음고생을 남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최고의 경험을 남긴다.
또다시 자전거로 금문교를 횡단하라고 하면 나는 절대 안 한다. 대신 어디선가 또 다른 엉성한 출발을 하고 있을 테다. *전기 자전거라면 생각해보지…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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