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장도연 씨가 진행하는 한 유튜브 채널에 35년 차 대선배인 박미선 씨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제작진이 박미선 씨에게 "장도연 씨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라고 요청하자 박미선 씨가 말했다.
아무것도 조언하고 싶지 않아
라이벌이니까
최근 많은 기업에서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너도나도 '수평적 조직 문화'를 외친다. 흔히 직급이 아닌 영어 이름을 쓰거나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호칭하는 것을 수평적 조직 문화라고 드러내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부장님과 신입 사원을 수평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부장님'을 '미선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신입 사원이 부장님의 의견에 반박하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까?
박미선 씨가 "아무것도 조언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장도연 씨는 장난스럽게 "(알아서) 잘할 것 같으니까요?"라고 물었다. 사실 여기에서 박미선 씨가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어서 조언할 게 없어요"라고만 대답했어도 굉장히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선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역시 오랜 경력을 가진 개그우먼이라 그런지 겸손하시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미선 씨의 의도는 달랐다. '조언'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말을 뜻하지 않는가. 그녀는 장도연이라는 후배를 자신의 아래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동급의 '프로'로 대함으로써 후배와 자신을 모두 높였다.
'수평적'이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편안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 선배의 입장에서도, 후배의 입장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말이다. 나의 아랫사람은 나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고, 나의 윗사람은 내가 의존할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뛰어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선배와 후배가 건강한 수평적 관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성장 동기 부여를 주고받을 수 있다.
나는 "언젠가 후배들에게 제 자리를 넘겨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리더보다 "너 나 이길 수 있어?"라고 묻는 박미선 씨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 죽을 때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선배와 후배만큼 수평적이고 좋은 라이벌 관계가 또 있을까.
글 | 유수진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를 썼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글로 쓰고 읽는 일을 좋아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위태로운 생각을 마음속에만 가두는 일이며, 그 생각을 꺼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글쓰기라고 믿습니다.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회사 밖에서는 작가로서 글을 쓰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