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 피어오르면 머리보다 몸이 앞선다. 그런 내가 도저히 그러지 못하는 분야가 하나 있다면 '혼자 하는 여행'이다. 코로나 전에는 종종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여행을 즐기는 시간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고민하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떠나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멈추면서 나의 혼자 하는 여행도 멈춰버렸다. 함께하는 여행조차 힘들어진 상황에서 혼자 움직여야 하는 여행은 더더욱 원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왜 혼자 하는 여행을 두려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해 안달일까? <거인의 노트>를 쓴 김익한 저자는 자신이 어떤 무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무의식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요소 중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인식과 기억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 집은 '도전'보다는 '안전'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새로운 장소보다는 가봤던 곳을, 모르는 맛보다는 아는 맛을, 짜릿하지만 위험한 것보다 덜 짜릿하더라도 안전한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아마도 내 무의식 속에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나은, 위험한 것으로 분류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각인된 무의식을 새롭게 형성해 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김익한, <거인의 노트> 중에서
그 무의식을 깨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20대 때부터 그 무의식을 깨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꾹 참고 혼자 여행을 떠나면 딱히 재미가 있진 않았지만 나의 용기에 대한 뿌듯함과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근 세 달 동안 여행 유튜브 <원지의하루>를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생활한 것도 어쩌면 '이제 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잠재의식 속에서 발현된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를 보며 '멋있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흔치 않은데, 혼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원지 씨가 나는 참으로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일상을 살듯 여행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약간 충격을 받은 것도 같다. 여행이라고 하면 예쁜 옷을 차려입고 관광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거나 멋진 호텔에서 SNS에 남길 만한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맛있는 식사 한 끼를 하는 것만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아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행을 했다.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점원이 계산을 잘못해 돈을 더 지불하거나 위생이 좋지 않은 기차를 탈 때에도 대수롭지 않아 했다.
특히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른 저녁만 되어도 숙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내가 여행을 너무 특별한 것으로 여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유독 여행만 떠나면 일상에서보다 훨씬 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광지마다 그 지역에만 있는 위험천만한 놀이기구가 있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건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절대 타지 않을 놀이기구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은 타야지'하고 타보는 게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하는 여행을 위험하다고 여긴 것은, 여행을 너무 특별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만큼 기대도 커질 수밖에 없다. 더 좋은 숙소를 구하고, 효율적으로 여행 스케줄을 짜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도 전부터 지쳐버리는 나는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치워버리기로 결심했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15분 안에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동선을 모두 짜버린 것이다(결국 비행기 표는 제대로 예약이 안 돼서 다시 예약을 했고, 숙소도 잘못 예약하여 1인실이 아닌 2인실로 예약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떠난 여행은 어땠을까? 단언컨대 살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재미'에도 여러 가지 재미가 있는데, 요즘 내게 필요한 재미는 '자유로운 재미'였다. 신경 쓸 거라곤 오로지 나의 편안함과 행복뿐인 시간 속에서 나는 그야말로 진짜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보폭을 맞추어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성산일출봉에 오르는 동안 20~30번도 넘게 쉬어가며 경치를 즐겼고, 우도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들르고 싶은 카페나 장소가 나오면 언제든지 내려서 내가 쉬어가고 싶은 만큼 쉬어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꼭대기까지 안 올라가면 되겠나'라거나 '배 타고 우도까지 들어왔으니 우도 전체를 다 돌아봐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만 같았다.
여행하는 동안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내자 "너 혼자 왜 이렇게 잘 놀아?"라는 답장이 왔다. 여행객이 많은 5월에,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이 뻘쭘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나도 내가 혼자 너무 잘 놀아서 당황스러운 참이었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특별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가장 즐거운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지금만큼 잘 보였던 때가 없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자 어린 시절 속에 각인된 무의식을 극복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