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인 비효율적 경험을 추천합니다

by 유수진

지난 5월에 인스타그램 DM 한 통을 받았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숭실대학교 신문사 숭대시보 기자입니다. 숭대시보 내 '동문의 여보세요' 코너에 참여해 주실 수 있으신지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졸업생 동문과 인터뷰하는 코너.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에도 이런 코너를 교내 신문이나 매체에서 종종 봤던 것 같다. 08학번이었던 나에게는 시조새나 다름없는 90년대 졸업생부터 이제 갓 졸업해 사회로 나간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사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머나먼 미래의 어르신들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회사에 취업해 자리를 잡은 선배님들의 이야기만 보이니까 나도 대학을 졸업하면 누워서 떡 먹듯 좋은 회사에 들어가 멋지게 살아가겠거니 했을 뿐이다.


큰 고민 없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대학 생활 중 유일하게 했던 활동이 교지편집위원회 기자 활동이어서 그런지 마치 15년 전의 내가 보낸 DM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들은 모교의 이름이 반갑기도 했다. 인터뷰 질문은 이랬다. 졸업 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추천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내가 전공한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썼지만 한 마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것이었다.


“경험하세요”


나는 대학 시절동안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해외로 나가 워킹홀리데이도 하고, 국토대장정도 하고, 다른 과 사람들이랑 미팅도 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도 떠났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무섭고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상 대부분 낭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자랑할 만한 경험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교지편집위원회 활동과 아르바이트이다. 선배님의 권유로 대학 동기 두 명과 함께 얼떨결에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갔다. 기자가 뭔지,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지만 선배님들을 따라 기자 시늉을 내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담당 교수님께서 수고했다며 사주시는 고기와 술을 먹을 때는 회식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고 어른과 함께 술을 마시는 태도를 그때 많이 배웠다. 졸업 후, '스펙'이라고 할 게 하나도 없었던 내게 '교지편집위원회 기자 활동'이라는 한 줄은 가뭄 같은 이력서에 단비가 되어주었고 작가로 살아가는 데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


소심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돈을 버는 일' 앞에서는 희한하리만큼 강해졌다. 1년 넘게 꾸준히 한 아르바이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버는 행위’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가급적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판단력도 좋아졌다. 아무리 알바생이 '을'이라지만 선을 넘는 일을 시키거나 내가 가진 능력만큼 대우해주지 않으면 출근한 첫날이라도 미련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와버렸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좋은 환경에서, 적합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회사원이 되지 못했을 것 같다.


반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 부족했다. 분량의 제약으로 인해 인터뷰에는 자세히 쓰지 못했지만 사실 2008년의 수진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경험은 바로 스펙이 되지도, 돈도 되지 않는 뻘짓, 바로 '자발적인 비효율적 경험'이다. 쓸모 있는 일인 줄 알고 덤볐다가 결국 허튼짓으로 끝난 경험은 많았어도, 허튼짓인 줄 알면서 자발적으로 덤빈 일은 거의 없었다.


자발적 뻘짓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의아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4시간 안에 시내버스만 이용해서 가는 것이다. 이 미션에 성공하려면 무려 20번 넘게 버스를 환승하고, 20분 안에 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2.7km를 뛰고, 버스 하나만 놓쳐도 미션에 실패하기 때문에 화장실도 편히 가지 못한다. ktx 한 번만 타면 2시간 30분 걸릴 거리를 말이다. 만약 누군가 2008년의 수진이에게 이러한 미션을 함께 하자고 권유했다면 수진이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뻘짓을 왜 해?”

출처 : 유튜브 '버드모이'


하지만 2023년 수진이의 생각은 다르다. 효율적인 경험은 인간을 수직적으로 성장시키지만, 비효율적인 경험은 수평적으로 확장시킨다. 의도치 않은 비효율적 경험을 통해 수평적 확장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의도한 비효율적 경험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수평적 확장을 일으킨다. 24시간 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만 타고 가는 경험이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경험보다 더 높은 수직적 성장은 일으키지 못하겠지만 세상을 훨씬 더 큰 시야와 남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누군가와의 경쟁도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미션에 도전하는 일만큼 세상에 즐거운 경험이 또 어디 있을까?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해보니 수직적 성장은 남들보다 조금 뒤처지더라도 그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평적 확장은 단순히 속도전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확신한다. 비교적 시간과 체력이 남는 때에 한 번쯤 자발적으로 뻘짓에 덤벼보는 것, 기나긴 인생에서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라고.


내 작은 머리로 생각했던 뻘짓들은, 사실 인생에 가장 귀중한 경험들이었다. 나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더 빨리 더 기막힌 뻘짓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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