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이드에 따라 이행하지 않았습니까?

by 유수진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탑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를 조종하고 있다. 충분한 고도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을 모두 잃는다. 추락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208초.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보통 조종사에게는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에 대비한 '가이드'가 있다. 가이드에 따라 이행하는 것이 조종사의 임무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가이드는 세상의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하지 못한다. 가이드에 맞춰 이행해도 자신의 목숨은 물론 탑승객들의 목숨을 살려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만약 나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 대로 움직였을 것 같다. 인간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닥칠수록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정해진 수순을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2009년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US 에어웨이즈 1549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은 우리가 인생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장 설리는, 부기장 스카일스와 함께 모든 가이드를 체크했으나 어떤 공항으로도 회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를 허드슨강에 착수시킴으로써 탑승객 전원의 목숨을 살려낸다. 세상은 그를 '영웅'이라고 불렀고, 그저 당연한 해피엔딩으로 끝날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항공사 측의 생각은 달랐다.


"왜 가이드에 따라 이행하지 않았습니까?"


결과가 좋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208초는 눈 깜짝할 순간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항공사 측에서 실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첫 회항 결정지였던 라과디아, 두 번째 회항 예상지였던 테터보로 공항 모두 무사 착륙할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와 설리는 과연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한 혼란에 빠져 버린다.


Sully Sullenberger

나는 언젠가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러다 결국 삶에서 큰 부분을 단칼에 잘라내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내린 이후 한동안 결정을 내리기 전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어디선가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힘들 때에는 결정을 내리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순간들 중에는, 결코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을. 내가 일일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경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가 나의 세포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나를 살려낸 직감이었다.


공청회 자리에서 항공사 측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사람이 비행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회항 을 하여 무사 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설리가 탑승객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는 누명을 쓸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때 설리가 묻는다.


"시뮬레이션을 한 실험자들은 이 실험을 위해 얼마나 연습했나요?"


실험자들은 시뮬레이션을 위해 무려 17번이나 연습을 했다. 기장 설리와 부기장 스카일스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상황'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항공사 측은 시뮬레이션을 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를 빠뜨렸다. 바로 인적자원을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이드가 아닌 직감을 따라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인생은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알아채는 방법은 유연한 사고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와 책임자를 알 수 없는 가이드들이 팽배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바로 유연한 사고다.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터'입니다. 일글레터는 마케터이자 책 <처음 쓰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특강>,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를 출간한 유수진 작가가 매주 수요일 아침에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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