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마다 1650번 버스를 이용한다. 그날도 푹푹 찌는 더위에 얼른 버스가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찜질방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다. 한 커플이 먼저 버스에 올라탄 뒤, 나도 뒤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퇴근길에는 늘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에 카드가 찍히는 소리를 유심히 듣지 않는데, 분명 내가 카드를 찍을 때 '다인승입니다'라는 기계 소리가 음악 소리에 살짝 섞여 들린 듯했다.
1650번 버스는 고속도로를 오가며 장거리를 빠르게 운행하는 광역버스이다 보니, 기사님들은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신다. 게다가 이미 하루동안의 피곤과 더위에 지친 터라 정상적으로 금액이 지불됐겠거니 하고 넘겨버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해서 찜찜했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기사님이 계신 앞자리로 가 물었다.
"제 카드가 다인승으로 찍힌 것 같은데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사님은 카드 기기를 확인해 보시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기사님은 내가 낼 금액과 뒤바뀐 커플에게, 나에게 줄 잔돈이 있는지 물었지만 커플은 없다고 했다. 요즘은 모두 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사님도 따로 잔돈을 갖고 계시지 않았고, 카드 기기로 환불을 하는 방법도 없는 터라 기사님도, 나도 모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도 1650번 버스 타시지요? 내일 제 버스 번호 말씀하시고 무료로 타세요. 손님이 손해를 보시면 안 되지요."
처음엔 '그러면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니었다. 설사 내가 다음날 그렇게 말하고 버스를 탔는데 다른 기사님께서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어쩌겠는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더위에 모두가 지친 퇴근길. 기사님은 운전 중이시라 상황을 해결할 여유가 없으시고, 버스 운행에 무리가 생겨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나는 하는 수없이 괜찮다고 말하고 뒷자리로 돌아왔다.
'2,800원 때문에 괜히 힘 빼지 말자.'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을 보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 본인들이 지불해야 할 금액을 내가 지불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커플이 이해되지 않았고, 왜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2,800원을 손해 봐야 하는 건지 그제야 논리적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2,800원이 어디 적은 돈인가? 이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4개나 사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잠시 후,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기사님이 버스를 정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셔서는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뒷자리까지 나를 찾아오셨다. 마치 '여기 계셨군요!'라고 말하는 듯한 반가운 얼굴로 내게 건네주신 건 기사님들이 쓰시는 업무 종이를 주욱 찢어서 쓴 쪽지 한 장이었다.
'1650번. xxxx호 OOO입니다. 승차요금이 따블로 찍혀서 1회 무료승차 부탁합니다.'
기사님이 내게는 쪽지를 건네주고, 커플에게는 카드를 건네받아 카드 기기에 1인승 금액을 더 찍으셨다. 1650번 버스는 그제야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을 했다.
어쩌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해프닝. 기사님의 입장에선 모든 버스 요금이 지불된 상황이고, 커플의 입장에선 의도하지 않은 공돈이 생겼기 때문에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침묵해 준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끝나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사님은 쪽지 한 장으로 잘못된 일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주셨다. 물론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운전을 하는 동시에 뒤차와의 간격이나 승하차하는 승객들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상황에서 글씨를 꾹꾹 눌러쓴 쪽지 한 장을 건네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좋은 뉴스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요즘, 1650번 버스 기사님이 찾아준 2,800원의 가치는 그저 아이스크림 4개를 사 먹을 정도의 가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를 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아주 작은 손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 사람을 도와주라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돌려 놓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버스가 조금 늦어지면 어떤가. 버스에 탄 그 누구도 억울한 마음으로 내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