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하루 8시간 이상의 시간을 쏟을 직업을 선택할 때, 평생 함께 아침을 맞이할 배우자를 찾을 때, 전재산을 부어 집을 살 때 등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두어야 어떤 어려운 결정에 있어서든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자기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애초에 정답지가 없는 인생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면 책을 고를 때에도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기준이 있는 사람은 없다. 베스트셀러를 읽거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으면서 천천히 자기만의 기준을 쌓아나가면 된다. 물론 자기만의 기준을 벗어나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잘못된 일은 아니다. 너무 자기만의 기준만 고집하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문제는 자기만의 기준 없이 아무 책이나 읽는 것이다.
10년 동안 책 670권을 읽으면 일어나는 일이라는 글을 쓴 지 2년이 흘렀다. 당시 도서관 대출 이력상 읽은 책의 권수가 670권이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약 100권이 더해진 772권이다. 내가 정확히 몇 권을 읽었는지보다 중요한 점은, 대략 772권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책을 끝까지 읽고, 어떤 책을 한두 장만 읽다가 덮어버리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고르는 나만의 다섯 가지 기준 덕분에 수만 권의 책이 쌓인 도서관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 당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772권의 책이 준 선물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특출 난 재능에 관한 것이든, 인생에서 겪은 고통에 대한 것이든 남들과 똑같지 않은 어떠한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을 나는 좋은 책으로 분류한다.
책 <뭐든 해봐요>는 로스쿨 재학 중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은 김동현 판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주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큰 걱정 없이 누운 수술대에서, 그는 평생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창창한 미래를 그려나가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놀랍게도 의사를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그 의사를 질책하고 욕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죄책감으로 인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다가도, 계속해서 비난을 받으면 오히려 그가 줄 수 있는 도움을 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용서를 했다고 해서 마음이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그에게 어머니는 '3천 배'를 권했다. 꼬박 10시간 30분 동안 절을 한 뒤, 사고 이후 처음으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진정한 '인정'에 도달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그는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이용해 걷는 법과 책을 읽는 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세상에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배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2021년 판사 임용에 합격했다.
만약 내가 저자의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 나는 내 남은 평생 그 의사를 저주하는 데에 소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든 해봐요>를 쓴 김동현 판사는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이 잃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진 것으로 뭐든 해보는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혹여 살다가 인생에 큰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우리에게는 한 가지 선택지만 있지 않다고. 이처럼, 나는 그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 책을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면, 명확히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고르지 않았는데도 내가 갖고 있는 고민과 연결된 책을 고르게 된다. 이를 테면 김영민 작가가 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내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때 고른 책이었다. 나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어딘가 텅 빈 듯 고독하다고. 즉,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도서관에서 어떤 책이 눈에 띄는지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 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에서
나는 무대에서 눈을 부릅뜨고 악보에만 집중하는 연주자였다. 혹여 조금이라도 틀릴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나를 바라보는 관객들과 눈 한 번 맞추지 못한 채, 오로지 악보의 끝을 향해서만 내달렸다. 연주가 끝난 뒤, 관객들이 떠나간 무대를 바라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가장 살아 숨 쉬어야 할 순간에, 나는 단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을.
만약 지금 삶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면 '결과'나 '목표'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영민 저자의 말처럼, 인생의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므로. 나는 지금 나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하지도 이유 없이 휘몰아치는 허무한 감정도 줄어들었다. 이처럼, 나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 줄 책을 좋아한다.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쓴 축구 감독이자 축구 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은 지구가 반으로 쪼개져도 자기만의 철학을 지킬 단단한 사람이다. 축구 선수로 생활할 때, 왼발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 오른발 축구화 안쪽에 바늘을 넣어두었던 일화라든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막노동 일을 하면서도 운동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운동을 한 이야기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강건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한 일은 '방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손웅정 감독 자기 자신은 물론, 손흥민 선수가 지금의 실력, 기술, 됨됨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본'을 지킨 결과였고, 그 기본이라 함은 자신의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청소부터 시작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까탈스러울 정도로 깔끔 떠는 건 청소뿐만이 아니다. 내 삶이나 생활이나 관계, 모든 것이 지저분하고 복잡한 걸 싫어한다. 삶은 담박할수록 좋다. - 손웅정,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중에서
책을 읽으며 그의 담박한 삶에 감화된 나는, 그를 따라 가장 기본적인 청소부터 시작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청소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인데,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조금씩, 자주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책에도 등급이 있다면, 가장 높은 수준의 좋은 책은 '독자를 행동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남들 따라 멋을 낸 문장이 아닌, 매일매일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이 담긴 문장은 화려하지 않아도 멋을 내지 않아도 반드시 독자의 마음에 가 닿기 마련이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표지 디자인이 눈에 띄는 책들이 많다. 아무래도 독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부분이다 보니 출판사들은 표지 디자인에 힘을 주어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자 노력한다. 현재는 표지 디자인이 변경되었으나 표정 없는 소년 일러스트가 그려진 소설 <아몬드>나 마치 미술관에 걸린 예술 작품과 같은 소설 <칵테일, 러브, 좀비>의 표지는 확실히 책을 '펼쳐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책을 '보는' 것을 넘어 '읽게' 만드는 건, 표지 디자인이 아닌 내지 디자인이다. 글씨체, 글씨 크기, 줄간격, 여백 등 책 안쪽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가독성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리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라도, 가독성이 불편한 디자인이면 나는 책 읽기를 가감 없이 포기해 버린다. 눈이 아프고 멀미가 나는 것을 참아가면서까지 책을 읽을 정도로 인내심이 깊지 못한 듯하다.
나는 보통 이동 중에 책을 읽는다. 그래서 가방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크기가 너무 크거나 어깨 통증을 유발할 만큼 두께가 너무 두꺼운 책은 잘 읽지 않는다. 몇 번 두꺼운 책을 빌린 적이 있지만, 끝까지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보통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는지만 알아도 독서가 훨씬 더 쉽고 재미있어진다.
기준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할까?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뿐만 아니라 온갖 매체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자가 되는 방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 이기는 대화법 등. 그러한 콘텐츠들을 보고 있노라면 빨리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동안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지 못한 내가 미련한 것만 같고,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으면 남들의 말에 휩쓸린다.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먼 훗날 내가 읽은 책의 권수가 천 권이 넘으면 그때는 책을 고르는 또 다른 기준이 세워져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기준의 고정성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기준이 있는가'이다. 기준이 없으면 남들 따라 책을 읽게 되고, 남들 따라 살게 된다. 매일 더 나은 기준을 정립하며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나만의 기준을 갖고 선택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