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주최한 김영민 작가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5주년 개정판 출간 기념 김영민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안양에서 잠실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요즘, 퇴근 후 경복궁역까지 북토크를 들으러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꼭 가고 싶었어요. 왜냐고요? 오늘은 퇴근 후 북토크에 가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김영민 북토크에 가기 위해 오후 반반차를 냈다는 말에, 한 동료가 물었어요. "반반차를 내고 갈 정도예요?" 생각해 보면 제가 평소에 김영민 작가의 팬으로서 그의 모든 칼럼과 책을 섭렵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꼈던 충격은 잊을 수 없죠. 유쾌하면서도 명쾌하고,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글이 살면서 겪고 있던 먼지 같은 고민들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스스로 꽤 멋진 답을 내리도록 도와주었죠. 또, 제가 이런 때 아니면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님을 언제 만나 보겠어요. 이 정도면 반반차를 내어서 가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제가 북토크에 간다고 하면, 아주 특별한 곳에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끔은 '아주 특별한 곳에 가는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도 괜찮아요. 평소보다 2시간 일찍 퇴근해 집과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북토크에 갈 때는, 마치 비현실적인 세계로 소풍을 가는 기분이 들어요. 방금 전까지 구글 시트를 보고 있던 내가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꽉 찬 곳에 앉아있으면, 그동안 결핍됐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도 들죠. 경복궁역에 도착해 네이버 지도를 켜고 초행길을 걸었어요. 그 순간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반반차를 쓰고 오길 참 잘했다 하며.
사진은 찍지 않겠습니다
김영민 작가님은 북토크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부의 말씀을 전했어요. 북토크가 진행되는 동안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김영민 작가님은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싫대요. 얼굴이 알려진다는 건 자유를 잃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어크로서 출판사 담당자분들은 슬프겠지만)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섭외도 거절했고, 모든 인터뷰 칼럼에 달랑 옆모습 사진 1장만 쓰고 계시죠.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에 '김영민 작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사실 북토크에 가기 전, 시간이 좀 남아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제 옆에 중년의 남성분이 앉아 계셨어요. '혹시 김영민 작가님이신가?'했지만, 생각해 보니 제가 작가님의 얼굴을 정확히 모르겠더라고요. 만약 제가 작가님의 얼굴을 알았더라면 작가님을 알은체 하고, 그의 시간 중 일부를 훔쳤겠죠. 그런데 어디, 저 같은 사람이 한둘이겠어요?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자신의 책 표지에 대문짝만 하게 얼굴을 걸어놓는 게 보기가 안 좋다는 김영민 작가님의 말에, 속으로 뜨끔했어요. 자신의 책에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걸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간판'인 작가들이 부러운 적이 있었거든요. 특히 SNS가 발달하면서 작가들은 연예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유명세가 본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과연 얼굴로 쌓아 올린 유명세가 영원할 수 있을까요? 참석자들을 한바탕 웃게 만드신 한 마디가, 저를 한참 동안 생각해 보게 만들었어요.
책으로만 만나온 작가, 그 작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인 전국 각지의(?) 사람들. 그들과 함께 약 두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되었어요. 평소 같았다면 늦은 저녁을 먹고, TV나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슬슬 잠에 들 시간이었죠.
반반차는 참 애매해요. 제대로 휴가를 즐기기에는 너무 짧잖아요. 대신 퇴근 후 북토크 가기에는 딱 좋죠.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더 파리>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요? 파리의 밤거리에서 홀연히 나타난 마차를 타고 1920년대 예술가들과 조우한 주인공이 다시 2000년대 현실로 돌아온 그 기분 말이죠. 그 기분이 궁금하시다고요? 반반차 내고 북토크에 가보시기를!
일글레 발행인 유수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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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