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까발리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속마음 까발리기]
만약 당신이 내가 보는 앞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발가벗은 기분이 들 거예요. 뇌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가, 감정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이 훌러덩 하고 벗겨지는 기분, 아실까요?
나는 작가로 태어났습니다. 작가가 되고자 하니 작가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예전엔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에세이를 씁니다. 있어 보이게, 에세이스트라고도 하더라고요. 에세이를 쓰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내 속마음을 까발리는 일이죠.
에세이를 쓴다는 건 내 이야기를 쓰는 거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에세이를 쓸 수 없어요. 나이가 서른인데 엄마랑 다툰 찌질한 이야기, 보잘 것 없는 취미 생활도 소재가 된다면 꺼내야만 해요. 창피하고 힘들더라도 쓰려면 어쩔 수 없죠, 꺼낼 수밖에.
왜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누군가를 같이 신나게 흉보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입을 꾹 다물고 내가 하는 이야기에 고개만 끄덕거리는 사람. 실컷 흉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요. 아, 내 속마음을 너무 다 말해버렸나? 속마음을 들키는 건 왠지 지는 기분이 들잖습니까.
말은 사라지기라도 하지, 글은 틀림없이 증거로 남아요. 찌질하고 보잘 것 없는 속마음이 못 생긴 손톱처럼 구체적인 모양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작가로 태어난 내가 해야하는 일이 바로 그런 거예요. 매니큐어가 새끈하게 발린 손톱이 아니라 투박하고 거칠거칠한 손톱이라도 당신에게 보이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속마음을 까발렸습니다. 처음엔 지인들이 제 글에 대해 이야기하면 창피해서 숨었어요.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뭐든지 반복해서 겪다보면 별 거 아니잖아요. 수영복도 처음에나 쑥스럽지 수영장에 빠져서 놀다보면 쑥스러움이고 뭐고 없어지고, 무서워보이던 선배님에게 자주 인사하고 다가가다보면 금세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가 되는 것처럼요.
까면 깔수록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누군가가 손톱을 보려고 하면 얼른 감추곤 하는데 그래, 내 손톱 못 생겼다 보태준 거 있냐? 하고 까발리고 나면 한결 손의 움직임이 편해져요. 글쓰기도 비슷해요. 그래, 나 이렇게 찌질한 생각 하는데 보태준 거 있냐? 하고 까발리고 나면 타자기를 두들기는 게 한결 편해져요.
한 번은 한 독자로부터 글을 보고 무척 공감했다며, 고민을 상담하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불편한 인간관계에 대해 쓴 글을 읽으셨나봐요. 제가 뭐라고 저에게 고민 상담을 하실까, 황송하고 감격스러워서 에세이를 쓸 때보다 더 큰 정성을 담아 답장을 보냈어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그때, 아, 속마음 까발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슬럼프가 올 때마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색깔의 책을 찾아 읽곤 했어요. 화려한 프로필을 가진 잘난 사람이 '힘내,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와 B급 냄새 물씬 풍기며 '힘내, 이런 나도 사는데 너도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에세이를요. 뻔쩍뻔쩍한 이야기보다 구김은 많지만 솔직한 B급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일 때가 더 많았죠.
어찌됐건 작가로 태어난 이상 속마음을 까발리는 건 필수 과제입니다. 저는 가끔씩 지인들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권해요. 글을 쓰면 말야, 나를 돌아볼 수도 있고 말야, 복잡했던 생각도 정리되고 말야, 주절주절하는데 제 진짜 속마음은 이것일지도 몰라요. 나만 속마음 까발리기 억울하니까 당신도 속마음을 까발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