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앞에 앉음으로써 반드시 승리하리라

[노트북 앞에 앉기]

by 유수진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노트북 앞에 앉기]



대청소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게 몇 개월 전인지요. 지나치게 깔끔한 상태보다는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널부러져 있는 상태를 좋아하거든요, 는 헛소리. 대청소를 못하고 있는 건 단지 창문을 열지 못해서예요.


청소를 시작하려면 창문부터 열어야 하잖아요.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하면서 일어나는 먼지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요. 창문을 여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야? 창문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 잠금장치를 풀고 힘껏 열어젖히기만 하면 되는데! 라고 생각은 합니다. 창문을 열기만 하면 분명 모든 일이 착착 진행이 될 걸 알아요. 내 몸은 자동적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할 거예요. 그러나 정작 소파에 붙은 몸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요.


모든 행위는 귀차니즘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이루어져요.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수많은 귀차니즘과 전쟁을 치룹니다. 애써 집중을 부르는 bgm을 켜고 등에 받칠 푹신한 베개, 따뜻한 차까지, 글쓰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지만 졸음이 쏟아져요. 나는 하루 8시간 강남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3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이니까요. 노트북 앞에 앉기만 하면 분명 모든 일이 착착 진행이 될 걸 알아요. 내 손은 자동적으로 노트북 보안 비밀번호를 누르고 오늘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나 쏟아지는 졸음은 잠이나 자라고 유혹해요.


귀차니즘은 언제든 꺼내 씹기 좋은 변명거리예요. 아니 글쎄 몸이 뻐근해서 글을 못 썼다니깐? 잠이 쏟아져서 글을 못 썼다니깐? 하고요. 그렇게 따지면 나는 하루도 피곤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 귀차니즘은 웃기는 변명이에요.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단지 노트북 앞에 앉지 못해서일 뿐이에요.


청소의 시작은 창문을 여는 것으로, 작가의 첫 일은 노트북 앞에 앉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시작은 귀차니즘과의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예요. 노트북 앞에 앉음으로써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작가로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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