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최근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책을 눈으로 보긴 하는데 도저히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질 못하더라고요. 아마도 일상 속의 다양한 고민들과 생각들로 인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럴 때는 잠시 욕심을 내려놓고 독서를 쉬고는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책을 읽고 싶은 시기가 찾아옵니다. 회사에 반반차를 내고 카페에서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잠깐 들렀는데요. 제 손에는 어느새 대출을 할 수 있는 최대 권수인 5권의 책이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더 좋은 책을 발견하면 5권의 책 중에 어떤 책을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곤 하죠. 다시금 독서 욕심이 차오르는 이 순간이 참 행복하더라고요.
독서 욕심이 차오른다는 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높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 책에서 좋은 문장을 많이 수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보통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때문에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데요. 대신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좋은 문장이 담긴 페이지수와 몇 번째 줄인지를 기록해 둡니다. 그리고는 구글 시트에 좋은 문장들을 한꺼번에 옮겨 적고,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부분을 다시 한 번 빨간색으로 강조합니다. 즉, 저는 좋은 문장을 수집하기 위해 1) 책을 읽고 2) 좋은 문장을 기록하고 3) 구글 시트에 옮겨 적고 4)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부분을 강조하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쳐 진액만 남겨놓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좋은 문장들은 어떻게 활용될까요? 첫 번째로는 제가 혼란에 빠질 때마다 효과가 빠른 '약'의 역할을 해줍니다. 고민이 있거나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 기분이 들 때마다 저는 마치 약을 먹듯이 수집해놓은 좋은 문장들을 쭉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면 '아,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이었지'하며 나의 정체성을 되찾고 정신적인 컨디션을 회복합니다. 두 번째로는 글을 쓸 때 유용합니다. 유명한 작가 혹은 전문가의 글을 인용하면 제 생각을 표현할 때 신뢰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데요. 가끔 제가 일글레에 담는 타인의 글과 문장들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수집된 문장들입니다.
세 번째는 의식하지 않아도 저의 모든 말과 행동에 남아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실 4단계나 거쳐 좋은 문장을 수집했어도 뒤돌아서면 어떤 책에서 찾은 문장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데요. 정확한 출처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불현듯 그 문장이 담긴 가치를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찰스 R. 스윈돌이라는 미국의 목사가 남긴 "인생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10%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90%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문장을 수집해둔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긴 이름과 문장을 모두 까맣게 잊어버렸죠. 하지만 일상 속에서 불만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는 무의식적으로 '상황'보다는 내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즉 '왜 이런 상황이 나에게 발생했을까?'라며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나는 왜 이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을까?'라고 생각을 전환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뒤집어볼 모색을 하게 되는 거죠.
위 4단계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4단계 과정을 반복해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이유는, 긴 세월동안 쌓아온 좋은 문장만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 중에 지난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저는 그럼 오늘도 좋은 문장을 수집하러 가보겠습니다.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 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