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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pr 20. 2024

20억을 버는 방법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왔습니다. 건강검진을 마지막으로 받은 게 벌써 5년 전이었더라고요. 검진을 받을 때마다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큰 걱정 없이 살아왔는데요. 그럼에도 검진을 받으러 가는 공복의 아침은 늘 싸늘하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검진을 받던 중, 상복부 초음파를 받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선생님께서 꼼꼼히 봐주시는 건가 싶었지만 왠지 무언가가 의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웅크려 누운 상태로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했습니다. '어? 안 되는데. 나 하고 싶은 일 많은데.'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면 누가 나 대신 일해주고, 돈을 벌고, 나를 돌봐줄까. 설사 그 고통을 짊어줄 사람이 있다한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저는 일하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거든요. 땀 흘려 일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니까요. 


언니는 20대 때부터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나는 노후보다 지금이 중요해!!"라며, 언제 올지도 모를 노후를 대비하는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아픈 곳은 여기저기 늘어만 가는데 금전적 여유마저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 덜컥, 언니 말이 옳았구나 싶었습니다.


일주일 후, 기다리던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낭 내에 작은 용종과 신장에 작은 용종이 발견되었으나 다행히 크기가 매우 작아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위험'인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신체 활동이었습니다. 최근 1년간 퇴근하고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맥주 1캔씩 마셨고, 그러다 지쳐 잠들었으며, 가까운 거리도 귀찮다는 이유로 차를 타고 다녔으니 사실 뻔한 결과였습니다. 갑자기 큰 병이 생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로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매일매일 쌓이고 있었던 일상 속의 노화였던 겁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말했죠. 지금 제발 필라테스하시고 PT하시고 스트레칭하시라고. 그렇게 하면 70대에 관절 아파서 주사 맞고 80대에 기저귀 찰 가능성이 많이 줄어든다고. 24시간 간병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20억을 버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제가 평생 일해서 20억을 벌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건강을 지켜 20억을 버는 일은 반드시 해내자고 다짐해 봅니다. 건강부터 지켜야 그렇게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20억을 벌든 100억을 벌든 하지 않겠습니까.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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