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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pr 13. 2024

퇴사를 하겠다는 후배에게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팀장님, 저 솔직히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계획입니다.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제가 이 직무에 있어서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회사는 그것을 발휘할 환경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 회사 핵심 인재인 신입사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우리 회사 혹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인재가 몇몇 선배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말이죠. 이 상황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뭐하니>에서 배우 이이경 씨가 한 기업의 면접을 보면서 받은 질문입니다. 즉, 인사팀장이자 선배로서 얼마나 신입 사원에게 공감하며 설득력 있게 답변하는지가 관건인데요. 먼저 배우 이이경 씨의 답변을 순차적으로 살펴 보며 저의 의견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선배의 답변 1.

"난 네가 그럴 줄 알았어. 너 요즘에 고민이 굉장히 많은 것 같더라고. 어려움이 많았지?"


→ 이이경 씨는 먼저 신입사원의 감정을 공감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핵심 인재가 사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했다면 이미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배로서 그런 상황을 모른 척을 해도 문제, 진짜로 몰랐다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후배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음을 어필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답변은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가만히 있었나?'라는 반문이 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선배에게 이야기하자 "알고 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와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었으면 먼저 나에게 물어봐줄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알면서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무책임한 선배라는 인식을 남게 했습니다. 


선배의 답변 2. 

"그래서 너한테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고맙다. 먼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사직서로 만들어 줘서 참 고마워."


→ 이이경 씨는 '알고 있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너한테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하고 있었다'라며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후배 입장에서는 선배가 나를 도와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들리겠지요.


또한 후배 역시 '퇴사'를 말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을 겁니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입사원들은 혹여 선배가 화를 내는 건 아닐까 하여 두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니 후배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을 테고, 선배의 입장에서는 후배를 설득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지죠. 


저는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왜 미리 자신에게 언급하지 않았느냐'며 대뜸 화부터 내는 선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선배는 일주일 후쯤 저에게 사과하며 퇴사를 재고해보라고 말했지만, 저의 마음은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선배의 답변 3.

"내가 잘은 모르겠지만, 너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나 다른 곳에서 꿈을 펼칠 준비가 되어서 우리를 떠난다면 난 그건 박수를 쳐주고 싶어. 하지만 조직 내 사람간의 문제로 퇴사를 한다면 그건 네가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어."


→ 사실 이 답변에서 뒷부분은 그다지 좋은 답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직 내 관계의 문제는 경중에 따라 감히 '회피'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으니까요. '나도 다 겪어봐서 아는데 그거 별거 아니다'라는 듯한 소위 꼰대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너의 상황을 100% 알 수는 없겠지만'이라고 먼저 언급을 한 부분입니다. 나에겐 별 것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후배가 퇴사를 결정하기로 한 원인을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다면 가장 좋은 답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배의 답변 4.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을 네 편으로 만드는 재미도 있다? 그게 잘 됐을 때 쾌감은 네가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을 때보다 더 재밌어. 그렇게 되면 네가 그 사람들을 아우르는 거야. 사람 문제를 해결한 후에 네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땐 내가 추천서도 써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준비도 해줄게. 그렇게 해보는 건 어때?"


→ 이이경 씨는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며 마무리하는데요. 저도 동의하는 해결책이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안한 것도 좋았으나 신입사원으로서는 그 방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다소 아쉬운 포인트였습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사람들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역시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았던 초반에는 다소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인해 좋지 않은 관계를 만들곤 했지만, 사회 경험이 쌓이면서부터는 두루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쌓으며 비교적 편안하게 회사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저라면 그 후배에게 10개의 커피 쿠폰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10개의 커피 쿠폰으로 앞으로 저와 10번의 대화를 나누며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을 것 같습니다. 10개의 쿠폰은 언제든지 써도 좋고, 혹여 10개를 다 쓴 후에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원하는 만큼 리필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할 겁니다. 그만큼 붙잡고 싶은 후배라면, 10개의 쿠폰이 아까울까요? 10개 혹은 그 이상의 쿠폰을 다 쓰고도 후배를 잡지 못한다면 저 역시도 그 후배를 깔끔하게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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