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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Nov 02. 2024

스몰토크 꼭 해야 돼?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얼마 전, 최근 입사한 회사 동료와 퇴근길에 마주쳤습니다. 그녀가 메고 있던 백팩에는 라켓이 하나 꽂혀 있었는데요. 무슨 운동을 하시냐 물으니 배드민턴을 한다고 했습니다. 마침 저도 몇 개월 전부터 배드민턴을 해볼까 생각하던 중이라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다 서로 갈길이 갈라져 우리의 첫 대화를 다 마치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죠. 


사실 그 동료가 입사한 뒤 몇 차례 스몰토크를 건넬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 스몰토크의 문을 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일을 하다 보면 스몰토크가 귀찮게 여겨질 때도 많고요. '굳이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지나치곤 했는데, 그날은 퇴근길이라는 좋은 타이밍에 배드민턴이라는 소재까지 더해지니 저도 모르게 스몰토크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었죠. 

다음 날, 그 동료와 다시 한번 화장실에서 마주쳤고, 우리는 전날 못다 한 이야기를 와다다-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오고 가며 마주쳤던 동료는 늘 무표정처럼 보였는데, 배드민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활짝 웃고 있었어요.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니 전 직장에서 만났던 또 다른 동료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전 직장에서 미팅을 하던 중, 저보다 한 달 늦게 입사한 동료와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아직 미팅을 시작하기 전이었고, 주변이 어수선하던 차에 "저는 OO님보다 한 달 먼저 입사했어요"라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그 동료는 마치 누군가가 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나 좋아하면서 "말 걸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하더군요. 다들 너무 바빠 보여서 먼저 말 걸기가 힘들었다며, 한 달 동안 혼자 끙끙 앓았다고 했습니다. 스몰토크 이후 우리는 서로 힘든 일을 돕고 의지하는 가장 친한 동료가 되어 전보다 훨씬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몰토크(Small talk)는 일상에서 나누는 가벼운 대화를 말합니다. 누군가는 사소한 일상을 묻는 게 부담스럽고, 일하는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물론 저 역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스몰토크는 정말로 주말에 뭘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와 같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 아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돼' 혹은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라는 뉘앙스를 내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하루 대다수의 시간을 컴퓨터만 보며 일하는 회사 안에서 스몰토크는 훨씬 긍정적인 힘을 갖게 만듭니다.


위 사례만 보면 제가 스몰토크를 무척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얼마 전 회사 대표님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요. 약 2시간가량의 식사를 하면서 제가 먼저 대표님께 말을 꺼낸 횟수는 대표님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을 싫어하거나(?) 스몰토크가 불가할 만큼 어렵게 느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대표님이 저에게 먼저 꺼내신 이야기 소재 중에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지만, 정말 친한 동료들끼리 할 법한 아주 일상적인 소재도 있었습니다. 연휴 때 계획은 있는지, 최근 우리 회사 성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난 먼슬리 미팅은 어땠는지, 뮤지컬 추천 등 분야도 경중도 다양했죠. 대표님이시라고 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쉬우셨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저보다는 훨씬 윗분인 대표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신 덕분에 2시간 동안 편안한 대화가 오갈 수 있었죠. 


스몰토크는 누가 먼저 시작해도 상관없지만 가급적 후배보다는 선배가, 신입사원보다는 기존 직원이 먼저 말문을 열어 주세요. 무표정에 가려졌던 동료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날 거예요.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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