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현재 연봉과 희망 연봉을 말씀해 주세요."
이직을 할 때, 보통 회사에서 먼저 연봉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지원자에게 희망 연봉을 묻죠. 저는 그때마다 참 난감했습니다. 적게 부르자니 손해보는 것 같고, 크게 부르자니 저를 떨어뜨릴 것 같았으니까요.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 '을'이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지만, 연봉 협상시 나의 패를 먼저 까보여야 할 때마다 '희망'이라는 뜻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지라도, 일자리가 간절한 순간 포부 있는 희망 연봉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한 번은 포부 있는 희망 연봉을 제시해봤는데요, 최종(3차) 면접에서 그만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탈락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세게 불렀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최근엔 취업 사이트를 통해 해당 회사의 대략적인 연봉 테이블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게 모든 회사의 복잡한 상황과 입장을 다 보여주진 않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 <미키피디아> 채널에서는 틱톡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라 씨를 게스트로 초대하여 글로벌 기업들의 연봉을 공개했습니다. 소라 씨는 2017년 페이스북에서 근무할 당시 연봉 2억 5천과 보너스 5천만 원, 그리고 주식 7천만 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실리콘밸리이기에 가능한 고액의 연봉도 눈에 띄었지만, 저는 연봉의 많고 적음을 떠나 투명한 연봉 공개가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알고 보니 실리콘밸리는 거의 모든 회사, 모든 직군이 레벨에 따라 연봉이 공개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남의 연봉 궁금해 하지 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거야."
제 주변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남의 연봉을 알게 되는 순간 늪에 빠지는 거라고. 그 말도 맞습니다. 남이 나보다 적게 받든, 많이 받든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게 되니까요. 10여년 전, 제가 일하던 한 회사 사장님은 월급 외에 보너스를 다른 직원들 몰래 챙겨주시곤 했습니다. 왜 월급을 이렇게 주시냐 물으니, 다른 경력 직원보다 저에게 더 많은 월급을 줄 수는 없고, 제 희망 월급은 높으니 이 방법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당시 저는 경력이 많은 사람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괜히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마음 한켠이 불편했습니다.
일을 한 대가로 받는 돈, 연봉. 일을 잘하면 잘한 만큼 더 받을 수도 있는 돈, 연봉. 여러분의 희망 연봉은 얼마이신가요? 저 부장님보다 내가 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더 많이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 순간들도 있고, 저 똑똑한 신입 사원이 영어도 잘하고, 프레젠테이션도 참 잘하던데 이러다 혹시 나보다 연봉이 더 높아지는 건 아닐까 순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비교 말고, 오직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성과만을 놓고 본다면 어떨까요? 만약 책정하기 어렵다면, 회사 밖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외주로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물론 회사 안팎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략적으로라도 이렇게 가늠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성과의 가치가 어느 정도는 손에 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제 희망 연봉은 얼마냐고요?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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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