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엔 크게 웃고 소리내어 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드라마 보기]

by 유수진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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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방영했던 tvn 드라마, <라이브>를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 경찰이 자주 등장하곤 하지만 보통 강력 사건을 위주로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라이브>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모를 정도로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인간미를 가득 넣어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지구대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실 드라마를 안본 지 꽤 오래됐습니다. 밤 10시에 맞춰 텔리비전 앞에 앉을 필요가 없는 편리한 시대가 됐지만, 나는 오히려 그 후로 드라마를 더 잘 안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오랜만에 한 회 한 회 아껴가면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드라마를 보다보니 예전엔 잘 몰랐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와 달리 크게 웃고 소리내어 운다는 것을요.


나는 그런 드라마 속 인물들이 참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에 한 번 웃을까 말까한 하루를 보내고,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내다 던지고 싶을 정도로 울화가 치밀어도 속으로 삼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반면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웃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화가 나게 한 상대방의 얼굴에는 김치로 따귀를 날립니다. 어린 아이가 봐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감정을 표현하지요.


안타깝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드라마 속 인물처럼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상사 앞에서 얼굴을 찌푸릴 수도 없고, 사는 게 힘들다고 지하철에서 소리내어 울 수도 없지요. 감정을 나타내는 일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찌든 일상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씩 잊어버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 회에도 몇 번을 울고 웃는데 나는 오늘 과연 몇 번이나 웃었을지, 소리내어 울어본 적은 언제였는지.


<라이브>의 기획 의도에 '드라마의 최우선 가치는 공감이다'라는 말이 써 있습니다. 일상 속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찌질하고 쪼잔한 인물들을 보며 공감을 느껴요. 다만, 나와 드라마 속 인물의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마음 속으로만 갖고 있는 감정을 그들은 화면 밖으로까지 느껴지도록 터뜨리고 폭발시킨다는 것이겠지요. 나는 에세이도 공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으로 파묻어버린 다양한 감정을 드라마를 통해 되새기고 돌아보려고 해요.


<라이브>의 등장인물 중 안장미(배종옥)는 오양촌(배성우)에게 이혼하자고 말합니다.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툭툭 이혼을 내뱉던 사람이 어느 날 눈이 벌개지도록 울면서 말해요.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평생 우리 아이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에도 당신은 함께 하지 않았다고. 당신 없이 혼자서도 잘 해왔지만 그 무섭고 두려운 순간에 나와 함께 해줬다면 참 좋았겠지, 라고요. 한없이 강하고 무뚝뚝해 보이던 안장미가 흘린 딱 한 번의 눈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여자가 보내온 수십 년의 인생을 다 보여준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먹먹함에서 오래도록 빠져나올 수 없었어요.


아 벌써 다음화는 7화입니다. 한 씬 한 씬 꼭꼭 씹어 아껴가며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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