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똑바로 바라보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실패를 똑바로 바라보기]
얼마 전,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희열2>에 김영하 작가가 출연했습니다. 최근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출간했는데요.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그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다녀와서 좋았던 것들만 이야기하지만 사실 누구나 실패한 경험이 하나씩은 있다고. 그러면서 그는 맥주와 핫도그를 먹다가 비행기를 놓쳤던 경험을 털어놨어요. 당시엔 억울했지만 그만큼 값졌던 맥주와 핫도그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여행이 어땠냐고 묻더라고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거짓말로 좋았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실 여행 내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고, 차라리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여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서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행은 꼭 좋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행에 들인 시간, 노력, 돈 등 모든 게 헛수고가 될까봐. 좋으려고 떠난 여행을 망친 바보가 될까봐.
실패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고 나옵니다. 그동안 꽤 계획적이고 조심스러운 여행만 다녔던 나에겐 비행기를 놓치는 것과 같은 대단한 실패 경험은 없습니다. 굳이 실패 경험을 꼽자면 '여행은 꼭 좋아야만 한다'는 착각에 빠져 여행을 다녔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즐겁지 않으면서 즐거운 척, 여행을 떠나온 동안만큼은 좋은 기억만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여행을 실패하게 만들었던 거예요. 나는 그런 여행을 뜻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김영하 작가가 말했습니다.
"성공만 하면 쓸 게 없어요"
작가라서 좋은 점은 실패의 경험도 좋은 글감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모든 일이 성공적이기만 한 사람의 글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여행이 좋은 이유는 다 거기서 거기지만, 여행이 실패한 이유는 제각기 다른 것처럼요. 그러니까, 실패를 숨기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실패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큼 부끄럽고 가슴에 멍드는 일이 또 어디있겠냐만,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실패를 쓸 수 없어요. 실패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겠죠.
그 후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났습니다.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척 하지 않는, 좋은 기억만 남길 필요 없는 여행을요. 그 여행을 통해 조금은 발견을 한 것도 같습니다. 진짜 여행의 이유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