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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양촌의 사명감을 짓밟았는가

[사명감 갖기]

by 유수진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사명감 갖기]



얼마 전부터 정주행한 tvn 드라마 <라이브>를 최종화까지 다 봤습니다. 뒷북이지만 이 뜨거운 감동을 어디에든 호소하고 싶을 만큼 무척 재미있게 봤네요. 드라마에 등장한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오양촌' 캐릭터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에게 이혼을 당할 만큼 이기적인 남편이고, 경찰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스스로 경찰공무원 자격을 내려놓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무도 교수이자 경찰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다정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거든요.


이 드라마는 오양촌의 사명감으로 시작해 사명감으로 끝납니다. 1화에서 오양촌은 새내기들을 교육하다가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사명감이 없어보인다"


사명감이라. 이건 마치 '너는 꿈이 있니?'라는 질문처럼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만약 내가 저런 말을 들었다면 마음속으로 '너는 있어?'라며 반항심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명감'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나옵니다.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히 거창하거나 허무맹랑한 느낌은 아닙니다.


나는 과연 사명감을 가진 사람인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니다 싶은 일은 빠르게 포기하는 습성이 있지만, 맞다 싶은 일은 끝까지 잘해보려 나름의 노력은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회사 업무가 되었든, 작가로서 글쓰기가 되었든, 인간관계가 되었든 말이죠. 기술과 경험치가 부족한 만큼 내 몸이 많은 고생을 하긴 합니다. 창피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회사에서 저지른 형편없는 실수들을 어렵게 무마시키고,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엉덩이에 땀나도록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고,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입장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도 사명감이라면 사명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가끔씩 나의 사명감이 자리할 곳을 잃는 때가 있습니다. 회사 업무 때문에 만나게 된 사람에게 아무 이유없이 안 좋은 말을 듣는다거나, 일상 속의 여러 가지 고민 때문에 노트북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도 글이 써지질 않는다거나,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만들려 애를 써도 벽에 부딪치기만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나는 그럴 때 사명감을 잃습니다.


최종화에서 범인을 검거하다가 크게 다친 오양촌이 자신 때문에 파트너 상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자 아픈 몸을 이끌고 징계위원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오늘 경찰로서 목숨처럼 여겼던 사명감을 잃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후배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라. 경찰의 사명감을 가져라. 어떤 순간도 경찰 본인의 안위보다 시민을, 국민을 보호해라. 그게 경찰의 본분이고 사명감이다. 수없이 강조하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했던 모든 순간들을 후회합니다. 피해자건 동료건 살리지 말고 도망가라. (생략)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현장에서 25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온 나를. 이렇게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대체 누가, 가져갔습니까? 내 사명감!"


오양촌의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사명감을 잃는 순간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경찰의 사명감에 비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잃었던 사명감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감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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