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하여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설레고 짜릿한 일이었다. 국어시간에 종종 시나 짧은 글을 써서 발표할 일이 있으면 애써 선생님의 눈을 피하는 친구들과 달리 당당히 손을 들고 발표를 했고, 백일장에 나가면 내 것은 물론 한 문장도 적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것까지 몰래 써주곤 했다.
그랬던 내가 조금 달리지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인 것 같다. 단지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떨결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는데, 전국에서 글 좀 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쓴 글이 A+ 부터 D- 까지 점수가 매겨진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발표를 시키시면 내 글이 문학적이지 않아서 비웃음을 사진 않을까 걱정스러웠고, 시 창작 수업에서 C를 받은 후로 시는 더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잠시 동화 쓰는 일을 했을 때는 내가 쓴 동화책이 전국의 교육기관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읽혔지만, 그 동화책을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아마 내 동화책을 읽었다는 아이나 그 아이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실제로 만났다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2013년에 처음 블로그를 개설한 후 나 혼자만 읽을 글을 써온 것처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용이라면 일기장에 자물쇠를 달아놓고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사실 내 마음 한켠에는 늘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꿈이 있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것만큼이나 막연한 꿈이긴 했어도 시청률 30%가 넘는 인기 드라마를 써보고 싶었고, 어린이용 짧은 동화책이 아닌 장편의 글을 담아 책을 내보고도 싶었다. 몇 차례 얕은 결심으로 그런 글을 써보려 시도는 했으나 늘 나 혼자에게만 읽힌 채 휴지통에 버려지곤 했다.
나는 여전히 작품을 쓰기엔 실력이 부족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나니 20대 때보다 쓸데없는 욕심도 많이 비워졌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이렇게 브런치에 내 감정을 담은 일상의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일이 이제 조금은 괜찮아졌다. 나를 아는 사람 몇몇이 내가 쓴 글을 수시로 읽고, 내 글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있지만 그것이 부끄럽기보다는 학창시절 반 아이들 앞에서 내 글을 발표할 때처럼 설레고 짜릿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내 브런치 글의 일일 조회수가 4만을 넘었다. 평생 내 글이 하루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것은 처음이다. 사실 나 혼자만 읽게 될 줄 알았던 글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나니 내가 쓰고 있는 이 한 문장에 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하루종일 근지러웠던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같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는 내 글이 나만 열 수 있는 자물쇠로 잠기지 않도록 꾸준히, 또 꾸준히 쓰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