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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29. 2019

지니의 마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

누군가의 화초가 되지 않으면 스스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영화 <알라딘>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그라바 왕국의 지도자인 '술탄'이 되지 못한다. 누구보다 아그라바의 백성을 사랑하고 술탄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건만, 주위 사람들은 화초처럼 침묵하라고만 한다. 천 년의 역사에서 여자 술탄은 없었기 때문에.


또, 공주는 왕자와만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좀도둑 신세인 알라딘을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다. 램프를 손에 쥔 알라딘이 지니에게 자신을 왕자로 만들어달라고 소원을 빌지만, 겉모습만 왕자가 될 뿐 완전히 신분을 탈바꿈하진 못한다. 알라딘이 자신의 가짜 신분 때문에 자스민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자 지니가 말한다. 너의 가치를 믿어보라고.


나는 어릴 적 뻔히 질 게임에 뛰어들곤 했다. 훨씬 키가 큰 친구와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훨씬 덩치가 큰 친구와 팔씨름 경기를 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보나마나한 게임이라며 말렸지만 붙어보지도 않고 미리 지고 싶진 않았다. 키가 작다고, 몸집이 조그맣다고 무조건 질 거라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계주 대표로 나온 아이들 중 내 키가 가장 작았고, 과 대표로 팔씨름을 하러 나온 사람들 중 내 몸집이 가장 작았다. 출발선 앞에 선 아이들과 내 손을 맞잡은 상대방의 눈빛은 '얘 정돈 이기겠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학다리 같은 다리 길이와 둔탁한 손바닥 힘 앞에서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다 지지도 않았다.


자스민은 화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알라딘과 함께 위기에 처한 아그라바 왕국을 구하고, 그녀의 용기에 감동을 받은 아버지는 그녀를 술탄으로 임명한다. 술탄이 됨으로써 법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생겼기 때문에 알라딘과도 결혼할 수 있게 된다. 알라딘이 지니에게 법을 바꿔달라고 소원을 비는 방법도 있었지만, 자스민은 침묵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믿음으로써 스스로 운명을 바꿨다.


복잡한 현실을 잊을겸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알라딘>을 보러 갔다가 조금 섭섭해졌다.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뻔히 질 게임엔 뛰어들려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어릴 적엔 크게 용기내지 않아도 가능했던 그 일을 이젠 동화 속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아서. 화초가 되지 않겠다는 자스민의 외침이 오래동안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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