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Jun 01. 2019

누가 누구를 기생충이라고 욕하는가

하룻밤 비에 누군가는 모든 걸 잃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의 간단한 줄거리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보기만 해도 지린내가 날 것 같은 반지하에 산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렇게 네 가족 모두 일이 없는 백수라 피자 박스를 접는 단순 알바로 근근이 삶을 떼운다. 그러던 어느 날 기택의 장남, 기우는 친구로부터 고액 과외 자리를 소개 받고 박사장(이선균)댁 대저택에 들어가게 된다. 잔디가 넓게 펼쳐진 마당과 최고급 가구로만 꾸며진 집안은 술취한 사람이 오줌을 누고 가는 반지하 집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나는 때때로 이 세상이 매우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는 사무실의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아 온몸에 담요를 둘둘 말고 일하는데, 누군가는 그 사무실 밖 뙤약볕에서 가슴팍이 다 보이게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폐지를 줍는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차이를 설명할 때 '노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었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려면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를 읽던 어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노력이 아니라 단지 ‘벽’ 하나 차이일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있는 사람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고, 돈이 없는 사람도 배가 고프면 밥이 먹고 싶다. 돈이 있는 사람도 사랑하고 싶고, 돈이 없는 사람도 사랑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욕구가 있지만 한쪽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포기해야 할 뿐이다. 이 세상에 참고 포기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꼭 금전적인 문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천에서 나던 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왜 '노력'이라는 단어 앞에서 코웃음을 치게 된 걸까. 노력하던 사람들이 기생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다른 이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기생충이라 부른다면 이 세상에 기생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과연 누가 누구를 기생충이라 욕할 수 있을까.  


계획에 없던 많은 비가 내렸다. 하룻밤 비에 기택네 집은 침수됐지만, 박사장댁 작은 아들은 마당에 미제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큰 코마저 사랑할 수밖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