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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give up studying English

[다른 나라의 언어 공부하기]

by 유수진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다른 나라의 언어 공부하기]



올해 초, 아니나다를까 야심차게 토익스피킹 책을 구입했었습니다. 점수도 점수지만, 영어는 매년 놓지 못할 숙제 같은 것이었어요. 당장 쓸 일은 없어도 '언젠가는 써먹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그나마 지금까지 배워놓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등 뭐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처음 영어를 배운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입니다. 나는 한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도 배우고 바이올린도 배웠는데, 어느 날부터 영어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영어인지도 모르고 ant, ball, cat, 꼬부랑 글씨를 따라 그리며 단어를 하나하나 익혀갔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 과거형이란 것을 처음 배운 사춘기 소녀는 lovestarted,라는 말도 안되는 인터넷 ID를 만들고 뿌듯했지요.


성인이 되고난 후 점수에 큰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영어를 배울 수 있게 되자 영어에 대한 진짜 흥미가 생겼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단어를 약간만 바꾸면 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고, 내가 평생 '가능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심장이 두근거렸듯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possibility'라는 단어 앞에서 심장이 두근거렸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가끔 외국인들이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쎄욜', '감쏴함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흐뭇함이 느껴집니다. 비록 발음은 부정확할지라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끼며 진솔하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도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내가 처음 소프트웨어 교육 회사에 입사했을 때 '디폴트로 해주세요'라거나 메일에 적힌 'FYI'를 보고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일에 적응이 되고나서 나 역시 흔히 사용하게 된 말이지만, 초반에는 모두 외계어처럼 들릴 수밖에요. 그러나 나는 그 세계를 빨리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에 적응이 되어갔고 그 세계 안으로 흡수되었어요. 다소 짧고 퉁명스러워보였던 한 개발자의 말이 사실은 굉장히 배려를 담은 말이었다는 것을, 그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곧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임을 한참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우리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정확한 발음 따위가 필요치 않듯,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특별하고 화려한 문장이 아닐 거예요. 비록 발음은 어눌할지라도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온 지구(정확히는 번역기)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며, 비록 완벽한 표현은 아닐지라도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 내 글이 당신의 마음에 닿을 거라고 믿어요. 올해도 토익스피킹 책은 앞 부분만 닳고 닳았지만, 하, 돈 기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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