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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Nov 12. 2019

어쩌자고 회사에 이런 것이 생겨버렸을까

#9. 회사에 간식이 많으면 생기는 일

밥은 못 먹어도 간식은 꼭 먹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근무를 하다가 열두 시가 되면 기가 막히게 배꼽시계가 울렸고, 네다섯 시쯤이 되면 '당' 시계가 울렸다. 당이 떨어지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는, 반드시 당을 채워줘야 한다. 때로는 크림이 잔뜩 올라간  프라푸치노로, 때로는 초콜릿이 듬뿍 발린 과자로. 다소 전투적으로 간식을 찾아 헤매는 내가 '먹으러' 회사에 온 것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투력 향상에 '당'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스타트업들의 채용 공고에서 '고퀄리티 간식 창고', '간식과 외부 음료 지원' 등과 같은 복지 사항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처음엔 '알아서 사 먹게 월급이 많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월급의 액수를 떠나 회사가 직원을 위해 간식거리를 지원해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먹을 게 아무것도 없으면 서운한 것처럼. 엄마가 쪄놓은 달달한 고구마 하나에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전 직장은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다른 팀분들과는 서로 소통할 일이 많지 않았다. 일주일 이상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간식 타임'이 우리의 침묵을 깨 주곤 했다. 유난히 밝고 친절한 성격의 경영지원팀 한 분이 종종 본인의 사비까지 내어가며 상당한 양의 간식을 사 오셨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간식을 올려둔 대형 테이블로 쭈뼛쭈뼛 모였다. 음식을 나누어 먹다 보면 안부도 묻고, 일 외적인 이야기도 하고, 싱거운 농담도 하게 되는 법. 우리는 그 후 서로 돌아가며 간식을 사 왔고 그렇게 회사 동료에서 '한 팀’이 되어 갔다.


리멤버로 이직 후 놀란 점은, 직원들을 위한 간식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주엔 아예 매점처럼 간식 진열대가 생겨 간식의 종류가 더욱 많아졌다. 고등학생 때 매점에서 즐겨 사 먹던 '나나콘'이 있어 어찌나 반가웠던지! 친구 신혼 선물로만 사줘봤던 캡슐 커피 머신도 있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눈치만 보다가 동료 한 분께 사용법을 여쭤본 후로, 모든 캡슐 커피맛을 다 탐험해봤다. 미리 사두었던 카누 커피는 서랍 신세로 전락했다.


드라마앤컴퍼니 회사에 있는 온갖 먹을거리들


일을 하다가 잠시 휴게실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으면, 또 누군가가 간식을 찾으러 오신다. 간식을 먹으며 "수진님, 사기로 했던 차는 어떻게 됐어요?"라며 근황을 여쭤보시기도 하고, 최근에 차를 산 나에게 마치 친동생에게 알려주듯 알아두면 좋을 만한 운전 꿀팁을 대방출해주신다. 문신이 그려진 팔토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잠시 휴식을 하고 나면 내 앞에는 빈 과자 봉지가 수북이 쌓인다. 그 많던 과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 회사에 간식이 많아 참 행복한데, 살이 찔까 봐 걱정이다. 어쩌자고 회사에 이런 것이 생겨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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