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퉁쳐진' 것을 경계하자
내방역 근처의 작은 마트 앞을 지날 때였다. 손님이 마트 앞에 진열된 고구마를 보더니 주인에게 물었다.
"이거 맛있어요?"
일정하게 포장되어 유통된 물건을 가격만 확인한 채 구입하는 것이 익숙해진 지 오래. 가게 주인에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봤자 돌아올 답은 뻔할 텐데, 어떤 대답을 듣게 될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 텐데. "맛있죠"라는 말이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갖고 기다린 대답은 의외였다.
"아유, 맛이 없으면 여기서 어떻게 21년을 장사했겠어요?"
순간, 저 고구마 진짜 맛있겠구나 싶었다. 21년 간의 장사 내공을 단 한 마디에서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는 내 뒤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졌다. 분명히 고구마 한 봉지는 손님의 손에 들려갔을 것이다.
마케터로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서비스 좋아요"라는 말을 어떻게 기깔나게 표현할까,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 고구마 파는 사람이 우리 고구마가 제일 맛있다고 말하듯, 마케팅하는 사람이 우리 서비스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지만,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만약 주인 분이 "맛있어요"라고 대답했다면 고구마가 팔릴 수 있었을까? 물론 팔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의 대답은, 좀 더 장기적인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손님이 이날 고구마를 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21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을 만큼 굳건히 신뢰를 지켜온 마트에 또다시 물건을 사러 들렀을 테니까 말이다.
마트 주인 분은 훌륭한 마케터다. 우리 마트에서 파는 고구마를 이 세상의 모든 고구마와 차별화시키는 사람. 맛없는 고구마를 팔았다면 결코 21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맛있다’를 표현하는 사람. 물건을 팔든 서비스를 팔든 ‘한 사람’에게 가닿지 못하면 그 누구에게도 팔 수가 없다.
내 나이 언저리의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화장품, 옷 등 갖가지 선물을 받아 봤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선물은 '자전거'다. 취준생 시절,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할 때마다 종종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곳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 탔다. 돈이 없는 취준생에겐 한 시간에 3천 원을 내고 바람을 쐴 수 있는 자전거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자전거마저 마음껏 타지 못하고 시간제로 빌려 타고 다니는 게 안타까웠는지, 언니는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줬다. 다리를 힘껏 굴려도 잘 나가지 않는, 그다지 품질이 좋은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취준생 시절의 막연한 불안감과 알 수 없는 분노를 삭여준 나의 첫 '애마'였다.
평생 받아온 수많은 선물들을 다 기억할 순 없어도, 자전거 하나만큼은 분명히 기억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줘도 그만인 무엇이 아니라,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퉁쳐진' 것은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다. 맛있는 고구마는 세상에 쌔고 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