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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an 07. 2018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을 하며 살았을까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라는 그림 에세이를 읽다가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았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김중석 작가처럼

나도 나에게 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넌 뭘 하면서 먹고 살았겠니?"


지금 나는 홍보 마케팅, 혹은 홍보 마케팅 비스무리한 일을 하며 먹고 살고 있다.

그 전에는 책 만드는 편집자로 조금 일했다.


내가 사회에 나와 돈이라는 것을 벌 수 있었던 모든 일을 다 합치면 꽤 많은 일들이 있다.

손님이 무슨 담배를 피우는지 알아맞혀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편의점 알바,

내맘대로 주고 싶은 만큼 서비스를 넣어주는 재미가 쏠쏠했던 노래방 알바,

인터미션 15분 동안 쏟아지는 손님들을 미친 스피드로 대응해야 했던 국립극장 카페 알바,

공무원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껴볼 수 있었던 여름 방학 시청 알바,

처음엔 손님들에게 욕을 먹는 게 서러웠지만 어느 순간  XX 정도의 욕은 우습게 느껴졌던 경마공원 알바,

첫 출근날 최악의 영하 날씨에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야외촬영을 따라다녔던 EBS 막내 방송 작가 일 등,

참으로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보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보기와 다르게

알바 면접을 보러가서도 몇 번이나 그냥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올 정도로 숫기가 없는 사람인데,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나는 아마도 나에게 맞는 일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을지 부딪쳐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에 이 일 저 일, 무작정 부딪쳐볼 수 있는 모든 일에 부딪쳐본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의 일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내가 해온 일들은 그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오로지 나 혼자 해야 했던 일도 있었고,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해야 했던 일들도 있었다.

몸이 힘들었던 일도 있었고, 머리가 힘들었던 일도 있었다.

칼퇴를 할 수 있었던 일도 있었고, 야근을 피할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남들보단 조금 더 멍청하게, 어쩌면 가장 정확하게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그러면 과연 이 일이 나에게 꼭 맞는 일일까?

세상 모든 일 중에 이 일만 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이 일을 사랑하고 있을까?

만약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주구장창 노래방을 들락거릴 정도로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했으니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어보는 건 어떨까?

그나마 잘하는 게 글쓰는 일이라면 전업 작가가 되어서 어디에든 글을 쓰고 돈을 벌어보는 건 어떨까?

운동 승부욕은 또 엄청나니 운동 하나를 배워 선수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20대 초반에 해본 알바들 중 잘 맞았던 알바 Top3를 쓰리잡으로 해 돈을 벌어보는 건 어떨까?


모르겠다,

대학 4학년 졸업반에 아무 생각없이 취업 시장에 던져졌을 때처럼 숨이 턱 하고 막히기 시작한다.

과연 지금 하고 있는 일 이외에

내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노동의 현장에서 나의 재능을 뽐냈던

20대 때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이 발전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떨어뜨려 놓아도 나는 또 그곳에서 잡초처럼 자라나 1등 인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상관없던 내가 지금의 회사에서 살아남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나는 그 어디에서도 내 가능성이 빛날 것임을 믿는다.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어디에서도 똑같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게다.





 edit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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