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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는 작가

by 유수진

책을 출간한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입니다.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엔 혼자 속초를 여행하고 있었어요. 검색창에 책 제목을 검색해보니 책과 함께 '저자' 유수진이라고 제 이름이 뜨더군요. 너무 깜짝 놀라서 급하게 일어나다가 허리를 삐끗해 며칠 동안 고생했네요.


"출간 작가가 되고 무엇이 바뀌었어?"라고 물으신다면 크게 바뀐 건 없어요.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마음가짐과 책임감이 강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다만 "왜 작가가 되었어?"라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조금 있어요. 제가 작가가 되기까지 몇 차례의 단계들이 있었거든요. 우선 한 단계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직장인 3년 차 때쯤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갔어요. 나이에 떠밀려 직장인이 됐지만 전 여전히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철부지 같았어요. 사회생활을 하며 여기저기 마음에 상처가 나기도 했죠. 동료들이 별 뜻 없이 한 행동을 며칠째 곱씹으며 잔뜩 경계를 하고, 상사의 충고가 마치 나만 미워해서 하는 가시 돋친 말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불안했어요. 하루하루가 쌓이는 게 아니라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어린아이로 머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그리고 이 모든 불안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


그러던 중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만났어요. 사실 이전부터 비공개로 글을 써오긴 했지만 꾸준히 쓰지는 못했거든요. 어차피 아무도 안 볼 테니까, 꾸준히 쓸 필요도 없던 거죠. 용기를 내어 공개적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어요. 물론 처음엔 많이 망설였죠. 내 생각과 글이 이상하다고 악플이 달리진 않을까? 비공개나 다를 바 없이 아무도 안 읽어주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게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지 깨닫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아무에게나 썼을 뿐인데 제 불안감은 조금씩 잦아들었거든요. 독자 분들이 공감하신다는 댓글을 달아주시면 아, 내가 잘못되지 않았구나, 하며 자신감이 날개 돋쳤죠.


한 단계 앞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저의 첫 공개적 글쓰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동시였습니다. 국어 시간에 동시를 쓰기로 한 날이었는데, 전날 언니와 대판 싸운 게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우리 언니는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할까, 우리 언니는 왜 이렇게 힘이 셀까, 생각하며 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을 담아 제 생애 첫 시를 지었죠. 친구들은 모두 살랑살랑, 진달래, 예쁜 말들을 조합해 봄에 어울리는 동시를 발표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읊는데 제목을 듣자마자 친구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어요. 제목이 '대포 언니'였거든요.


그 후로 친구들은 우리 언니를 대포 언니라고 불렀어요. 너희 언니는 정말 무서운가 보다, 하며 이야기하는데 신기하게도 언니에 대한 미움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마음속에만 있었을 때는 언니에 대한 미움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잘 몰랐는데, 글로 쓰고 나니까 참 별 게 없더라고요. 저는 집으로 달려가 언니와 다툰 것도 금세 잊은 채 같이 놀자며 쪼르르 따라다녔어요.


혹시 당신에게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이 있나요? 그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그 마음을 천천히 글로 적어 내려 가 보세요. 마음은 모양이 없지만 꺼낼수록 구체적인 모양이 만들어질 거예요. 제가 작가가 된 것도 바로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여전히 그 마음들을 글로 꺼냄으로써 풀어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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