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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Sep 13. 2020

운세는 안 믿지만 운세를 봅니다

한 시간에 5만 원. 친구들이 사주를 보러 가자고 졸라도 단 한 번도 흔들려본 적이 없다. 사주나 운세를 믿지도 않고 재미 삼아 보기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딱 한 번, 서른이 넘어 처음 5만 원을 내고 본 사주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본 사주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윗사람한테 아부 떨 줄 모른다거나 결혼을 하려거든 천천히 할수록 좋다거나. 그러니 앞으로는 좀 적당하게 유연함을 부릴 줄도 알고, 사람 보는 눈을 키우면 좋다는, 당연한 덕담을 듣고 왔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당연한 줄 알면서도 안 되는 일들이 참 많다.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식 없고, 말을 예쁘게 하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없다.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먹고사는 일에 치여 전화 한 번 드리기가 힘들 뿐이고, 나름 참다 참다 터진 마음이 못된 말로 내뱉어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반복해서 다짐할 뿐이다. 내일은 부모님께 더 잘하겠노라. 내일은 말을 더 예쁘게 하겠노라.


다짐에는 계기가 필요한데, 문득 패션 잡지에서 별자리 운세를 보다가 '이거다!' 싶었다. 별자리 운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시시하고 뻔한 경고가 대부분이다.


- 욕심을 부리면 낭패를 볼 수 있음

-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함

-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투자를 분산해야 함

- 중요한 업무에 신중을 기할수록 좋음


틀린 말 하나 없지만 살다 보면 잘 지켜지지 않는 것들. 매월 초마다 재미 삼아 운세를 보고, 특히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들만 잘 지켜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한 달 한 달, 좋은 습관이 쌓이면 언젠가는 어떤 운세 따위에도 끄떡하지 않는 단단한 자신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번 달 내 운세는 그야말로 구름 한 점이 없다. 그동안 남 모르게 묵묵히 노력해오던 일(그런 게 있나?)이 드디어 괄목할 성과를 낼 것이며, 또한 그로 인하여 후원자를 만나거나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니, 설사 그런 일이 없더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고, 갑작스러운 성공세에도 평소의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경고라면 경고. 갑작스러운 성공세 따위는 없지만 겸손함은 항상 경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나의 약점은 최대한 숨기고 강점을 강력하게 어필해야 할 때가 있는데, 비교적 겸손함이 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었으니 말이다.


운세는 미래를 점치는 용도로도 쓸 수 있지만 지금의 나를 반성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운세를 믿지 않는 내가 매월 운세를 보는 이유다.


2020년 9월 나의 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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