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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l 07. 2018

비를 몰고 다니는 여행자

내가 여행 간다고만 하면 꼭 비가 오더라  

올해 바다를 보러 두 차례 동해를 찾았다. 엄마와 함께 올해 첫 바다를 보러 갔던 4월, 비가 오는 바람에 차가 없는 우리는 호텔 안에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고, 아쉬운 마음에 6월에 친구와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에도 또 비가 내렸다. 나는 그저 해변에 앉아 파란 바다를 감상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여행을 간다고만 하면 꼭 비가 내려서 우중충한 회색빛 바다만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올해뿐만 아니라 어느새부턴가 내가 여행을 갈 때마다 유독 비가 자주 내렸다. 2016년엔 제주에 갔다가 '차바' 태풍을 맞아 숙소 안으로 들어오는 빗물을 밤새 닦아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무슨 오기였을까, 이번 장마철에 또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게다가 이번엔 혼자다. 장마가 꽤 진행되었으니 내가 갈 때쯤이면 끝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보다. 내가 여행을 가는 2박 3일 내내 비소식에, 태풍 '마리아'까지 겹쳤단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왜 굳이, 이 장마철에,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이 야단일까? 설상가상, 기대하고 기대하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정말 죄송한데, 예약하신 방이 누수가 돼서 환불을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여행이고 뭐고 다 접어버릴까 싶었다. 까짓 거 그냥 가자며 내 팔을 부추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침 비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숙소도 환불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냥 다음에 가면 되련만, 어렵고 어렵게 마음 먹은 이 여행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스물 세 살 때쯤이었나, 혼자 템플스테이를 갔던 때를 빼고 제대로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혼자 가는 여행을 꿈꿨지만, 막상 혼자 떠난다고 하면 무섭고 외롭진 않을까 싶어 망설이게 됐다. 그런 내가 이번에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번아웃' 이라는 걸 느낀 지 한달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어딘가 홀로 뚝 떨어져, 현재 내 자신의 상태를 진단해봐야 할 것 같았다. 매일 앉아있는 내 자리, 늘 지나다니는 길거리, 질리고 질린 출퇴근길에서는 아무것도 진단할 수 없었다. 결국 예약했던 숙소비를 환불받고, 생각했던 예산보다 훨씬 큰 호텔로 다시 예약했다.


제주에서 차바 태풍을 맞았을 때, 숙소로 들어오는 물을 닦아내면서 '일기예보 좀 미리 알아보고 왔으면 더 좋은 날씨에, 더 기분 좋게 놀다가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꼼꼼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탓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 소식에, 태풍까지 몰려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때와 똑같은 악몽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서도 끝내 '취소불가'라고 적힌 호텔룸을 예약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내 여행에서 날씨는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1순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의 목적이다. 내가 왜 여행을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하다면 비가 오나, 태풍이 오나, 꿋꿋이 여행을 간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쉼 그리고 정리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신경써야 한다는 압박감없이 오로지 내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자 미션이다.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면서까지 꼭 제주에 가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이 여행에 대한 갈망이 무척이나 강렬한가보다. 기왕이면 파란 바다를 보면서, 기왕이면 좋은 날씨를 만끽하면서, 기왕이면 해변가에 앉아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뭐 어쩌겠나, 비를 몰고 다니는 여행자가 내 팔자인 것을.


비행기만 잘 떴으면 좋겠다. 그 후부턴 여행의 목적에 따라 몸과 마음이 알아서 움직여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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