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판에 랍스터를 올린 영양사

by 유수진

빈 방을 채우는 일보다 어지럽혀져 있는 방을 치우는 일이 더 어렵다. 기존에 있던 것을 리모델링하고 리디자인하려면 기존의 체계를 먼저 이해하고 그것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에도 충분히 기능하고 있던 것을 굳이 변형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 않는가.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더 블럭>에 '1인 1랍스터' 명품 급식을 만든 김민지 영양사가 출연했다. 한 학교의 급식 영양사로 근무할 당시, 학생들을 위해 중식예산비 한도 내에서 가끔씩 랍스터나 대게와 같은 특별식을 준비한 것인데,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 번쯤 '오늘 급식에 랍스터나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상상이나 해봤을 법한 일을 그녀가 실현해낸 것이다.


tvN <유 퀴즈 온더 블럭> 김민지 영양사 편 화면 캡처

그녀는 음식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녀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학교를 다녀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급식은 보통 거기서 거기다. 소시지나 불고기가 그날의 메인 반찬이고, 거기에 김치와 함께 몇 가지 나물 반찬이 나온다. 밥은 보통 흰쌀밥이고 가끔씩 흑미일 때도 있으며, 국은 미역국, 콩나물국, 김치찌개 등이 반복되어 나온다. 일주일 중 가장 지루한 수요일마다 짜장밥과 같은 깜짝 메뉴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매일 학교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 적은 없었다. 몇몇 친구들은 급식이 물린다며 몰래 담장을 넘어 떡볶이를 먹고 오기도 했지만, 나는 급식에 큰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늘 그렇게 먹어왔고 급식은 그런 것이니까.


만약 직장에 새로 들어온 신참이 “이거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라고 문제 제기를 한다면 고참들은 여지없이 “야, 여기는 원래 이래. 그냥 하라면 해.”라고 대답할 겁니다. 어제 얻은 지식, 사고방식, 생각, 고정관념, 습관을 오늘의 문제에도, 내일의 문제에도 계속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을 ‘지식 활용’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오늘의 문제에 적용하면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직에서 선호하는 전략입니다. - 정재승, <열두 발자국>중에서


처음 조직에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딱히 틀린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최선의 방법도 아닌 상태로 일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며칠이 지났을 무렵, 더 이상 그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도 이미 적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일이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조직에서 모든 일이 최선의 방법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언제든지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조직원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급변한다고 말하면서 예전의 성공 경험을 맹신하는 것만큼 고리타분한 일도 없고, 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니 알아서들 잘하셨겠지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만큼 안일한 자세도 없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런 랍스터(=기존의 관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왜 학교에서는 랍스터를 먹을 수 없지?'라고 생각까지는 할 수 있어도, 직접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1마리당 5,500원에 랍스터를 구매해 올 엄두는 나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대로 살아도 충분히 내 역할을 다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굳이 랍스터를 급식판에 올리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예산을 변경하고 복잡한 절차를 밟고 싶진 않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와 무관하게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각자의 랍스터가 있다는 것이다. 다 늙어서 춤은 무슨 춤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백발의 신사가 되어서 난생처음 춤을 배우는 사람에게서 후광이 비치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평소와 달리 버스 내부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 승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버스 기사의 배려에 마음이 찡해진다.


'굳이 뭐하러 그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언젠가. 사는 게 팍팍할수록 '굳이'라는 말을 듣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굳이 랍스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세상은 아주 조금 더 재미있어질까.

오늘 당신이 굳이, 리모델링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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