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느님은 왜 관찰 예능을 안 할까?

by 유수진

나도 궁금했다. 유재석(이하 유느님)씨는 왜 관찰 예능을 안 할까?


<나혼자산다>, <미운오리새끼>, <전지적참견시점>과 같은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는 다른 연예인들의 일상생활을 지켜보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맡은 적은 없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뛰어다니는 <런닝맨> 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토크를 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과 같은 비교적 힘들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고집했다.


10년이 넘게 유느님의 팬이자 시청자였던 나도 그런 그가 안쓰러워 보일 때가 많았는데, 최측근들이라면 당연히 그에게 관찰 예능을 하라고 부추겼을 것이다. 무명 시절부터 유느님의 오랜 절친이었던 지석진 씨가 유느님의 30주년을 축하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 특집에 출연해 말했다.


재석이 너도 '보시죠!' 같은 프로그램(관찰 예능)도 좀 하면서 설렁설렁했으면 좋겠다고.


설렁설렁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사람은 누구나 전속력으로 내달리기만 하면 지치니까. 때로는 설렁설렁도 하고, 뒤로 숨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도 하면서 살아야 않겠는가.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헬기를 타거나 영하의 날씨에 반팔을 입은 채 라면을 먹는 모습


대중의 관심을 온몸으로 받는 위치에 있는 만큼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하는 그이기에, 다소 민감한 이 질문에도 적당한 온도로 재치 있게 답변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자신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직설적이고 소신 있게 대답했다.


"(관찰 예능을 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트렌드다, 주류다 하는 것들에 굳이 나까지 뛰어드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편안하게 녹화를 하는 것이 나름 재밌는 녹화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의미를 두면 되지만, 한편으로 내 양심에 '돈을 편하게 버는 것이 아닌가?' 나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든다"


<무한도전>에서 맨몸으로 스키장 슬로프에 오르거나 일부러 미션을 더 어렵게 만들어 새벽 늦게까지 촬영을 이어나갈 때면 멤버들은 "그만 좀 하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유느님은 항상 "조금만 더 해~"라고 했다. 잔뜩 짜증이 난 멤버들의 얼굴과 달리 그의 얼굴은 생기가 가득했고, 오히려 그런 멤버들에게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멤버들은 리더인 유느님의 전략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몸을 더 움직일 수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프로그램의 인기는 날로 솟았다.


물론 관찰 예능은 관찰 예능대로 재미가 있다. 큰 웃음이 빵빵 터지는 순간은 많지 않아도, 밥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보기에 좋다. 예능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배우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게 신선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주 보던 한 관찰 예능의 MC 웃음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관찰 예능 특성상 BGM처럼 MC의 웃음 소리가 깔리곤 하는데, 웃음이 터질 일이 전혀 없는 시점에 큰 소리를 내어 억지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텔레비전 속의 텔레비전에 있는 사람들이 휘황찬란한 대저택에서 PPL 음료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트루먼쇼'에 갇힌 트루먼이 된 듯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관찰 예능은 관찰 예능대로 재미가 있고, 버라이어티는 버라이어티대로 재미가 있는 법. 유느님은 버라이어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서 힘이 닿는 한 시청자들에게 버라이어티로 웃음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10년도 더 된 오래전에 방영한 체육 버라이어티 <출발 드림팀>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자라온 나는, 몸으로 부딪치고 달성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버라이어티가 사라진 TV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마 유느님의 대답이 의미하는 바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돈을 벌더라도 자신이 더 재미있고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때 더 가치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더 힘든 길로 돌고 돌았을 것이다.


10년의 무명 생활을 지나 20년 동안 쉴 틈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맡아 온 그에게 일의 가치를 배운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를 쓴 박산호 작가의 말처럼,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을 떠나 인간을 고양시키는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기에 쉽고 편한 일만을, 남들이 좋다는 일만을 좇을 수는 없다. 남들이 좋다는 일을 쫓아가는 건 쉽지만, 내가 진심으로 어떤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깨닫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시간을 들인 만큼 힘이 닿는 그 날까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값어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이자 30년 후 박수를 받는 방법임을 그의 소신이 증명해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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