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멤버십에 가입할 수 없는가

by 유수진

취업준비생 시절 인터넷 카페에 취업 정보를 찾아다니던 중, 한 카페에 가입했지만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을 읽으려면 카페 주인장이 설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했는데 이를 테면 가입 인사를 남기고, 댓글을 10개 이상 달고, 내가 작성한 글을 3개 이상 남겨야 주요 정보를 볼 수 있는 등급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등급을 얻으려고 다른 이의 가입 인사글에 일일이 "반갑습니다", "자주 소통해요"와 같은 댓글을 다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주인장의 입장으로선 사람들이 주요 정보만 읽고 발길을 끊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어떤 그룹의 가입이나 활동 조건을 만드는 것은, 마케터로서 우리 회사의 행사나 프로모션을 기획할 때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이다. 한 예로, 나는 우리 서비스가 더 많이 알려지도록 하기 위해 파워블로거 분들을 초청해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블로거 분들이 우리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본 후 각자의 영향력 있는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면, 해당 콘텐츠가 바이럴 되어 우리 서비스가 널리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만약 대상을 모든 블로거로 설정했다면 어땠을까. 구독자가 10명도 안 되는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고 해서 바이럴의 효과를 얻기는 어려울 테니, 회사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구독자가 많은 파워블로거를 초청하는 것이 이득이다. 그런데 이 조건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회사에 가급적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으면서도,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과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두가 길었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온 한 백화점은 우리 동네에 있는 가장 큰 백화점이다. 나는 친구를 만날 때에도 늘 "백화점 앞에서 만나자"라고 하고, 현재는 재택근무 중이라 평일 점심에 지하 1층에서 자주 음식을 사 먹는다. 예전에는 서울 방방곡곡으로 옷을 사러 다녔지만, 요즘은 서울에 나갈 일이 드무니 대부분 이 백화점에서만 사고, 주말에 콧바람을 쐬러 나가고 싶을 때에는 백화점 안 서점에서 책이나 문구류를 사는 게 작은 낙이다. 그런 나의 단골집이 뉴스에 나온 이유는 멤버십 회원 조건 때문이었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멤버십 관련 내용을 봤던 것 같은데, 그것이 이 주변의 고가 아파트 브랜드 입주민만 가입 가능한 멤버십 행사인 줄은 몰랐다.


나는 그렇게나 이 백화점을 자주 찾는 사람이지만, 해당 멤버십 가입 조건에는 부합하지 못했다. 그들이 내건 조건의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멤버십 가입 조건을 그렇게 설정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가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백화점의 매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더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더 비싼 물건을 살 확률이 높을 수는 있지만, 그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백화점에서 더 비싸고 많은 물건을 구입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10만 원 이상 구입하면 5%를, 30만 원 이상 구입하면 10%를 할인해주는 형식의 할인 행사처럼, 오히려 1년 구입액이 얼마를 넘는 사람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주는 조건을 세웠다면 더 공정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현재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논란이 일자 백화점 측에서는 "대상을 넓히는 등 가입조건을 바꿨다"라고 해명했지만 소비자가 원한 해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비자는 대상을 넓혀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대상 조건을 세워주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파는 사람에게 특정 행사나 프로모션의 대상 조건을 세우는 일은 회사와 고객,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한 일이다. 매일 나와 같이 쇼핑을 하던 친구가 멤버십에 가입하고, 매일 3시간씩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는데 너는 왜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미안, 나는 그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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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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