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치킨드셰프에서 메뉴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데니는 고등학생 때까지 운동 선수였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갑작스러운 부상을 입은 후 더 이상 운동 선수로서 생활할 수 없게 되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평소 카페에 관심이 많던 그는 바리스타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고, 스무살이 되던 해 호주로 떠나 약 1년 정도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청년이 난생 처음 먼 타국에서 홀로 지내며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한 번도 음식을 해본 적 없었기에 스스로 밥을 지어먹는 일도 처음엔 어리숙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해야만 했다. 퇴근 후 조금씩 음식을 배우고 연습하다보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즐겁게 느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어주는 일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는 남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사는 곳을 옮겨 유명 레스토랑에서 키친핸드(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로 했다. 호기심 많은 이 청년은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다.
지원하고 얼마 후 서호주의 Top2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Head Chef)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데니가 키친핸드가 아닌, 셰프로 지원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데니는 키친핸드에 지원한 것이라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데니는 이 전화가 자기 인생에 찾아온 기회임을 직감했다. 다시 전화를 걸기까지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어요.
정말 간절히 해보고 싶었거든요.
-치킨드셰프, 데니 셰프-
데니는 다시 전화를 걸어 사실은 자신이 한국에서 요리 경력이 있다고 말했고, 헤드 셰프는 내일 Trial(하루동안 함께 일해보는 것)을 해보자고 했다. 데니는 Trial을 위해 요리에 필요한 칼, 레시피북 등 도구란 도구들을 모조리 구입해서 요리 연습에 매진했다. 혼자서 양파 10kg을 사서 칼질을 했다. 당시로서 그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었던 2천 2백불을 순식간에 다 썼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 결과 최종 합격했다.
요리 실력이 없는 것을 들키지 않았을까? 물론 많이 혼났다. 하지만 혼나면서 배웠고, 간절했던 만큼 실력은 빠르게 성장했다. 요리 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할 때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셰프의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티카'는 호주에서 1위이자 세계 32위에 뽑힌 레스토랑인데, 그는 반드시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19번이나 지원했지만 워낙 지원자가 많다보니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가. 20번째 지원에 기회가 찾아왔다. 아티카에 chef de partie(한 부서의 조리장)로 들어간 데니는, 수셰프 자리까지 올라갔다.
최근 코로나가 발생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여러 곳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한국 파인다이닝 중 가장 유명한 곳에서도 면접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면접을 취소했다. 치킨드셰프라는 곳에서 새로운 치킨 요리의 시장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메뉴 개발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셰프로서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항상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선택을 해왔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옳았다.
봉준호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음식에 저만의 팁을 넣고, 다른 요리와의 차별점을 만들어요. 대중적인 입맛을 따라가다보면 개성이 사라지거든요.
-치킨드셰프, 데니 셰프
데니가 지금의 셰프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스토리로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그 한 통의 전화에 거짓말을 했던 순간을 하이라이트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거짓말이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태권도 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때 좌절보다는 재빠르게 다른 길을 모색했던 순간도, 비록 요리사로서의 경력은 없지만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요리 공부를 했던 순간도,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본 프로그램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던 순간도, 그 어떤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제안도 뿌리치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 현재의 치킨드셰프를 선택한 순간도. 모두 그가 최고의 셰프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