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축구 프로그램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구척장신팀과 액셔니스타팀이 맞붙은 경기가 있었다. 두 팀 모두 막강한 실력으로, 결국 연장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각 팀의 골키퍼를 맡은 구척장신팀의 아이린과 액셔니스타팀의 장진희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승부차기는 절대적으로 키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부차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린이 마치 묘기를 부리듯 상대팀의 골을 4연속으로 막아낸 것이다. 압박감이 느껴질 상황이었을 텐데도 오히려 동료들을 다독이며 흔들림 없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이린은 어떻게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상대팀의 골을 연속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을까?
아이린은 경기가 있기 전 틈틈이 승부차기 영상을 찾아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영상 속에 있는 골키퍼를 자신에게 대입하며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그려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뛰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만 했을 뿐인데 그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은 실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틀림없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면접을 봤는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당락 여부가 달라진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절실하게 입사하고 싶은 회사일수록 비교적 더 많은 준비를 하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절실하게 입사하고 싶은 회사여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면접에 임하면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면접 준비가 꼭 대단한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 인사를 나눌 때 "안녕하세요"를 어떤 톤으로 할지 소리 내어 연습해보기도 하고, 거울을 보고 면접용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는데 그러한 준비가 실제로 면접관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준비돼 있다'는 자신감으로 발현됐다.
준비돼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그 순간 가장 강한 사람이 된다. 객관적으로 실력이 뒤떨어지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능력이 생긴다고 믿는다. 초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례 중 하나는 버킷리스트다. 소원을 쓰면 이루어진다는 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인 것 같지만 소원을 글자로 쓰는 순간 자기도 모르는 새 그 꿈을 이루어낸 자신을 상상하게 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게 된다. 그래서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글로 쓰거나 소리 내어 말하라고 하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상상하는 것과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는 것은 결국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버킷리스트를 쓸 때에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30년 넘게 이루지 못한 목표 중 하나인 '영어로 프리토킹 하기'를 2021년에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살면서 영어로 프리토킹을 할 수준의 실력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어낸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 중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훨씬 더 현실감 있는 꿈처럼 느껴졌다. 비록 이 꿈은 올해도 이루어지기 어렵겠지만, 약 세 달간 영어회화 모임에 참여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많은 것을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버킷리스트는 꿈을 이루어내기 위해 쓰는 목적도 있지만, 내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서랍 속 노트에 내 꿈이 적혀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 저 사람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생각된다면, 그 사람은 지금 이미지 트레이닝 중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