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대학시절 7번 국도 국토종주 중 히치하이킹의 경험을 살려 주차장에서 이제 막 승인을 받고 기지로 들어가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 나를 태워줄 수 있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거절했다. 그렇다. 여긴 총기가 허용되는 나라 미국이었고, 더군다나 검증되지(?) 않은 수상하고도 낯선 외국인 남성을 기지로 데려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우버를 타고 가세요." 내가 방문자센터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누군가가 내게 해준 말이었다. '우버를 타라니? 군 기지에 그게 가능해?'라고 생각했지만, 그랬다. 미군 기지로 출입하는 우버 기사들은 일종의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갖고 있어서 기지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렇게 나는 우버를 불러서 다행히 기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다행히 심포지엄을 위한 사전 등록을 끝마칠 수 있었다. 첫날부터 한국군과 다른 미군의 시스템에 '압도' 당했고, 스스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전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우버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로비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여유롭게 스몰토킹을 나누는 미군들로 가득했다. 그 낯선 공기 속에서 다시금 소외감을 느끼며 주변을 서성이던 그때, 익숙한 한국어 한마디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어요?"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특전복 차림의 한국군 소령이 서 계셨다. 그분 역시 나를 발견하고는 무척 놀란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심포지엄은 당시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생 단체의 행사였고, 한국군 대위가 공무 출장도 아닌 사비를 들여 이곳까지 찾아올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급자였기에 정중하게 경례를 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도 이곳(포트브래그)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플로리다주 탬파에 위치한 미국 특수작전사령부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한국군 연락장교인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다른 외국군 동료들과 이 심포지엄에 출장을 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한-미 협의에 따라 ??년도부터 한국군에서 최초로 파견된 장교였고, 2년째 한국군 특수작전 발전을 위해 근무하고 있었다.
그도 출장으로 오게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중간중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플로리다 탬파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전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연락장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특수작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근무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연대급(현 여단급) 부대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소위 ‘미생’이었고, 기본적인 영어 인사조차 서툴렀던 처지였다. 그런 내 눈에 비친 소령님의 모습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거대한 목표처럼 보였다.
심포지엄을 마치고 본래 목적이었던 박물관 방문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석사 논문을 위한 유의미한 자료를 확보하며 사비를 들인 여정의 정당성도 얻었다. 성공적인 여정을 뒤로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나, 시차와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뒤섞여 탓에 잠은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다가, 나는 마음속으로 깊게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플로리다 탬파에 갈 거야. 한국군 연락장교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내 군생활의 궤적을 바꿔놓을 운명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