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살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 Jul 15. 2020

요리 마일(Cook Miles)

‘밥’이라는 한 음절 단어가 가지는 깊이를 생각해본다. 먼저 시작과 끝을 정해보자면, 장보기부터 설거지까지가 되겠다. 다음은 순서를 따라가 보자.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를 구매한 뒤, 집으로 돌아와 재료 손질 후 요리 시작. 그렇게 완성되는 한 끼. 아직 더 남아있다. 마지막 정리와 설거지. 그 양은 몇 인분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의 끼니에 내 노동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헤아려본 적 있는가?  


1인분의 끼니를 위한 노동은 혼자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4인분의 끼니를 위한 노동은 몇 명이 감당하는 것이 마땅할까. 때늦은 고민을 해본다. 그전에 끼니에 사용되는 노동을 재보기(헤아려보기) 위해 그 단위를 정해야겠다.


먹을거리가 생산자 손을 떠나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뜻하는 푸드 마일(Food Miles)처럼. 음식이 마트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노동을 뜻하는 용어 말이다. 요리 마일(Cook Miles)이라 부르면 어떨까. 요리 마일. 한 끼가 완성되기까지의 노동을 헤아려보게 된 일은 부끄럽게도 최근의 일이다. 지금까지 수 만 번의 끼니를 먹으면서 몰랐던 요리 마일을 결혼 1년이 지난 요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즐겁게 살려고 결혼했지 끼니를 해 먹으려고 결혼한 건 아니다.


우리 가족은 두 식구. 둘 다 일을 한다. 결혼 초 6시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면 몸을 바쁘게 움직여 저녁을 해 먹곤 했다.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저녁 메뉴 검색을 한다. 마음에 드는 메뉴를 찾았다면 다행이다. 집 앞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 혹은 비슷한 재료를 산 뒤 집으로 돌아오면 7시. 최대한 손질된 재료를 사는 편이지만 그래도 껍질을 까거나 썰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빠르면 8시쯤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정리 후 한숨 돌리면 보통 9시가 훌쩍 넘어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닌 끼니만 있는 삶이 된 이 생활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점점 벌어지는 나와 남편의 요리 마일리지 격차.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노동의 분배. 어느 날은 남편이 이번 주는 본인이 저녁을 하겠다며 라면을 종류별로 박스 가득 사 왔다. 그 모습에 화가 났다. 내가 차린 밥, 국, 몇 가지의 반찬이 라면 한 그릇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끼니 앞에선 그와 나 사이의 입장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날, 많이 울고 오래 잠들지 못했다. 대신 우리의 저녁은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채우는 시간으로 변해갔다.


요즘엔 퇴근 후 만나 외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산책을 가거나 운동을 등록해 다니고 있다.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이다. 지금 보면 간단히 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부딪히고 싸웠다. 이제 집에서 먹는 공식적인 끼니는 1주일에 2끼 주말 아침이다. 그렇게 사 먹으면 생활비 감당을 어떻게 하냐, 저금은 하냐는 물음이 날아온다. 세상의 모든 식사에는 요리 마일이 있다.  외식과 집밥을 정확한 비용으로 따져 요리 마일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우리의 소비가 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기 찜닭을 먹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대략 식당에서 먹으면 3만 원. 간편 요리 키트로 만들어 먹으면 2만 원. 재료비 만 오천 원이다. 단순 가격 비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 요리 마일을 넣어 실제 가격을 계산해보자. 


식당_3만 원+노동(0분) = 30,000원 

밀 키트_2만 원+조리(30분)+설거지(30분) = 28,590원

재료비_만 오천 원+손질(40분)+요리(50분)+설거지(30분) = 32,180원

(2020. 최저시급_8,590원으로 계산)
  

노동은 노동이고, 정성은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얼마 전 삼시세끼 어촌편 5가 끝났다. 시즌마다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면 나도 한 번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순식간에 문어 짬뽕을 해내는 차승원을 보고 있으면 그 불맛을 내고 싶고, 바위를 뒤집어 얼굴만 한 전복을 잡는 손호준을 보면 전복이 먹고 싶은 그런 식이다. 유혜진의 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메뉴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 차승원의 손이 빨라지고 손호준의 몸이 바빠진다. 그 세 명의 요리 노동을 점수로 계산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을 보고 있으면 사는 일에 먹는 게 차지하는 비중이 참 크다는 걸 새삼 느낀다.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를 구해 요리하고 먹고 치우고 다시 다음 끼니를 고민한다. 그렇게 세 끼를 해 먹으면 어김없이 날이 저문다. 삼시세끼의 인기 비결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힐링만큼 그들의 노동을 보는 재미인 것 같다. 섬에서 가스나 전기를 전혀 쓰지 않고 온전한 노동으로 음식 해 먹는 일에 온종일 메어있는 모습은 이젠 비현실이고 로망의 영역이다. 


우리 삶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온다. 세 끼와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다. 다만, 정성은 의무가 아닌 선택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의무는 자신 몫의 요리 마일리지를 쌓아가는 일이지 않을까. 



에디터_이도

매거진의 이전글 '밥'은 왜 '밥맛'이 되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