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끝을 기다리며

영화_월드워Z_2013

by 이도


World War Z, 2013. (스포일러 주의)



2020년 3월 워킹데드를 보며 집 밖에 나가지 않던 날들이 일 년 전 일이다. 무섭고 징그러워 수시로 눈을 감으며 손가락 사이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시즌10쯤 되니까 머리가 터지고 살점이 찢겨나가는 장면은 식상해졌고 좀비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었다. 그 뒤로 내 인생에 좀비물과 고어물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열렸고 세상에 볼 만한 영화들이 많아졌다.


평범한 듯 비범한 제리의 히어로 좀비물

그로부터 1년 뒤, 오랜만에 좀비물 영화가 보고 싶어 졌다. 일요일 저녁, 밥을 먹으면서 아쉬운 주말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영화로 피트형의 월드워Z를 골랐다. 나는 이 영화를 그냥 좀비물이 아닌 히어로 좀비물이라고 생각한다. UN소속 조사관이라는 직업에 위기 대처능력이 어벤저스급인 주인공 제리가 '좀비 바이러스'를 파헤치고 알아가는 과정을 보면 공감하리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화롭던 어느 날, 의문에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그 속도는 어떤 때보다 빨랐다. 그렇게 좀비로 가득 찬 도시에 제리를 구하기 위해 헬기가 뜬다. 약속한 시간을 딱 맞춰 무사히 구조되었고 도착한 배(군함)에는 아무도 감염된 사람이 없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물론 같이 구조된 가족들을 위해서 제리는 다시 그곳을 떠나야 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징그러운 좀비나 인간의 본성보다는 좀비 바이러스를 이해해보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익숙한 인간 간의 배신이나 반전도 없다. 좀비의 약점이 태양 빛이라거나 급소가 뇌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장애가 있거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해 공격하지 않는 좀비 모습을 보고 제리는 죽지 않을 만큼의 병원균을 좀비 바이러스의 백신으로 사용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효과가 증명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 말하는 병원균은 천연두와 신종플루, 뇌수막염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2020년 이후에 만들어졌으면 저 병원균 사이에 코로나 19가 포함되려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도 끝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끝난 게 아니다. 끝이 가깝지도 않다. 시작된 경로는 아직 모른다. 그저 시간을 끌었을 뿐. 하지만 이젠 기회가 있다. 일부는 맞서 싸울 방법을 찾아냈다. 싸울 수 있다면 싸워라. 서로를 돕고 만반의 준비를 해라. 전쟁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영화 마지막 제리의 내레이션이다. 덤덤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영화 속 세상에서 마무리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영화를 뚫고 나왔다. n차 유행과 진정을 반복하고 백신 공급과 부작용에 관한 수많은 정보들. 이젠 작년과 재작년을 기억 속에 내가 마스크를 썼던가 쓰지 않았던가로 구분한다.

2021년. 여기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다양한 방법으로 소독을 하고 가는 곳마다 흔적을 남기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다만 우리는 전쟁이 아닌 종식을 기다린다는 것이 다르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루틴'을 외친다. 하지만 왠지 그 옛날 자기 계발 책의 개정판 같은 느낌도 난다.


결국 누가 정해준 어느 쪽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속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불안하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면 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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