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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May 18. 2020

'비 시무 20조'가 놀라운 진짜 이유


얼마 전부터 2017년 12월 1일 발매되었던 앨범에 수록되었던 '깡'이라는 곡이 차트를 역주행하며 유튜브 누적 조회수 820만회를 넘어섰다. 엄청난 수치다. 발매된지 2년이 넘은 곡이 이렇게 역주행을 하다니. 



역시 비라는 이름 앞에 괜히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차트 역주행에 있지 않다. 


'어떻게?', '왜?' 역주행 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깡'은 왜 역주행 중일까?


사실 정지훈이라는 가수는 가수로써 대한민국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영화는 달랐다. 바로 UBD라는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낸 영화 자전차와 엄복동 때문이다. 누적 관객수 172,213명. ('깡'의 누적 조회수가 820만인데, 영화 관객수는 17만명이다.) 처참한 실적을 기록한 이 영화는 가수 비를 조롱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영화판에서 최대의 망작 어워즈를 할 때마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거론되었고 매스컴에 비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UBD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월드스타 비는 엄복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레이니즘(Rainism)이라는 신드롬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이제 대중들의 혹평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2017년 발표되었던 '깡'이라는 노래는 발매 하던 당시 때에 맞지 않는 과장된 안무와 개연성 없는 가사로 대중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았었다. 특히 이 노래의 핵심은 가사다. 


Yeah 다시 돌아왔지
내 이름 레인(RAIN)
스웩을 뽐내 WHOO!
They call it! 왕의 귀환
후배들 바빠지는 중!
신발끈 꽉 매고
스케줄 All Day
내 매니저 전화기는
조용할 일이 없네 WHOO!


갑분자기자랑으로 시작되는 노랫말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15년을 뛰어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허나, 자만하지 않지
매 순간 열심히 첫 무대와 같이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
30 sexy 오빠
또 한번 무대를 적셔
레인이펙트
나 비 효과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를 봤을 때 분명히 자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당하게 '자만하지 않지.'라고 말한다. 



예전 터보나 언타이틀, 듀스 시대에 나왔을 법한 노랫말로 인해 이 곡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결국 모든 음원 차트에서 Top 100 진입에 실패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곡이었던 '깡'이 MBC 놀면 뭐하니 코너에서 유재석과 비의 대화를 통해 다시 주목 받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10년차 진성 팬인 Dr. vader가 제안한 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20가지 직언, 비 시무 20조를 소개했다. 


비 시무 20조 




사실 비 시무 20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시무 20조'라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무 20조는 시무 28조를 패러디한 것이다. 고려시대 성종에게 올린 유학자 최승로의 개혁안, 시무 28조의 앞에 붙은 '시무'라는 단어를 여기에 가져온 것이다. 가히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 '케비넷 [KBS청주]' 댓글 캡처.


실제 성종은 최승로가 올렸던 개혁안 중 일부를 받아들여 국가를 재정비하고 유교사상을 국정 운영의 근본 사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시무 28조가 큰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단순히 최승로 개인의 생각을 넘어 성종이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는데 주요 아이디어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무 28조에서 비 형님을 위한 조언, 직언을 해준 10년차 진성 팬 Dr. vader의 정성이 갸륵하다. 



비 시무 20조 


1. 재간둥이(꾸러기) 표정 금지

2. 입술 깨물기 금지

3. 윙크 금지

4. 중간에 손뼉 치면서 리듬 타기 금지

5. 브뤳키다운 관객 호응 유도 금지

6. 소리 질러 금지, 뭭썸노이즈 금지

7. 차에 그만 타기

8. 차에서 내리지 않기

9. 화려한 조명 그만

10. 레이번 선글라스 금지

11. 꼬만춤 금지

12. 글씨 새겨진 모자 금지

13. 사회생활 잘하는 작곡가 멀리하기

14. 현재 2020년 현실을 직시하기

15.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자아도취 금지

16. 프로듀서에서 손 떼기

17. 센스 있고 영감 있는 프로듀서 새로 구하기

18. 가사에도 손 안 대기

19. 인스타 아이디 rain_oppa 변경 추진

(rain_appa 레인 아빠 추천)

20.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지인들 옆에 두기


비 시무 20조를 천천히 읽어보면 과연 10년 차 진성 팬이 해주는 직언이 확실하다. 그동안 '비'라는 가수가 보여주었던 퍼포먼스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결코 뽑아낼 수 없는 요소들을 조목조목 잘 기록해주었다. 


11조 꼬만춤 금지


하지만 이 댓글을 읽었을 때 가수 비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비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놀림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그는 베테랑 답게 정말 의연하게 대처했다. 




1. 트렌드를 읽지 못함을 인정


"깡이 요즘 분들이 보기에 조금 신기했나 보다."라는 유재석의 이야기에 비는 자신이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점이 멋있었다. 아티스트들은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당연히 있다. 가수 비는 그 부분을 쿨하게 인정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처럼 인정하는 모습이 팬들에게는 더 솔직하게 다가왔고, 비라는 사람의 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2. 비판을 위트로 받아치기 


노래 '깡'이 조롱과 함께 역주행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비는 이점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했다. 스스로가 '1일 1깡', '1일 3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걸 위트로 승화시켜버린 것이다. 심지어 '놀면 뭐하니?'에서는 1일 7깡을 한다고 했다. 깡 신드롬의 선봉자가 된 것이다. 


로버트 그린의 명저로 불리는 『인간 본성의 법칙』에는 오픈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다섯 가지 로드맵으로 역경에 대한 시각을 꼽는다. 


역경과 고통은 대개 당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지만, 당신의 반응을 정하고 그 반응에서 비롯될 운명을 결정할 권한은 당신한테 있다. (P.359)


비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이 딱 이거다. 자신의 흑역사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기 보다는 이에 대한 반응을 유머로 바꿔버린 것이다. 로버트 그린의 말처럼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권한은 나 스스로에게 있기 때문이다. 




성종은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고려라는 나라를 더 튼튼한 나라로 만들어갔다. 과연 비는 시무 20조 중에 몇 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 '비 시무 20조', '비 깡'을 통해 비라는 가수의 멋진 재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게 언제가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한 가지 만은 알게 되었다. 


정지훈이라는 인간은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역시 김태희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 


그를 응원하며 나는 1일 1깡 하러 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xqFvYsy4wE4


 


사진 출처 

깡 뮤직비디오, MBC 놀면 뭐하니 장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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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edoodt/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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