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명인 류시화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드디어 읽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삶을 대하는 자세'가 51개의 꼭지로 나눠져 있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이야기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를 소개한다.
퀘렌시아는 스페인어다. 이렇게 쓴다. Querencia.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스페인을 떠올려보면 타파스, 돈키호테, 카바, 바르셀로나 등 여러가지가 생각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파이팅이라고 불리는 '투우'다. 투우장 한 쪽에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는 그 구역으로 가서 소진된 에너지를 채운다. 에너지를 채운 뒤, 다시 싸우기 위해서. 그 곳은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다. 나를 재충전하기 위한 회복의 장소다. 이 곳이 바로 '퀘렌시아'다.
누구에게나 퀘렌시아가 필요하다. 일주일동안 몰아치던 폭풍 업무로 소진되어버린 직장인, 독박육아로 억울함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짜니맘, 습기가 가득 찬 교실에서 아이들과 찝찝한 한 주를 보낸 상중쌤. 모두 다 회복의 장소에서 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꼭 장소가 아니여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만남, 기름이 번지르르한 족발, 달콤한 크림이 얹어진 크림생맥주, 이 모두가 퀘렌시아다. '투우 덕후'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도 스타벅스에서 카라멜마끼아또 그란데를 옆에 두고, 맥북으로 글을 쓰며, 몰스킨 노트에 Penco 볼펜으로 메모를 할 때는 누구보다 강해진다. 당신의 퀘렌시아는 무엇이고 어떤 시간인가?
"스페인 한 번 다녀왔다면서 왜 또 가는 거야?"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같은 나라를 가더라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에 따라 여행의 품질이 달라진다. 여행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어떤 곳'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다. '프랑스에 갔다'보다 '프랑스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에 여행이 주는 기쁨이 담겨있다.
시인 류시화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가 너무 많다. 가고, 또 가고, 또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 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여행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보낼 것인가?
독일의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 맺는 두 종류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나-그것 ich-es’과 '나-너 ich-du'. ‘나-그것’의 관계는 수단으로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너’의 관계는 존재 자체로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내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너'또한 나에게 하나뿐인 존재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 '나-너'의 관계로 이어져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세 번만 만나도 '너'가 될 수 있다. 10년을 지내도 '그것'에 머무를 수 있다. 물론 '그것'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부버의 말이다.
'마르틴 부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만남'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삶에서 가장 참된 것은 만남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말해준다라는 말은 일리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해봐야 한다. '나-너'의 만남인지, '나-그것'의 만남인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이라 해도 '나-그것'의 관계가 지배적인 사람은 행복으로부터 거리가 멀다고 류시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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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