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아바이'

우연히 만난 카자흐스탄의 귀인

by 쑥갓선생
아바이 동상.jpeg

공무원교육기관 앞에 서 있던 한 사상가의 동상


KDI(한국개발연구원)의 KSP 사업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번 사업의 카운터파트 기관은 APA였다. 카자흐스탄의 공무원과 정책 담당자들을 교육·훈련하는 기관으로, 말 그대로 이 나라의 행정과 정책을 떠받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곳이다.


기관 앞에 도착해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정문 앞에 서 있는 한 인물의 동상이었다.

낯선 이름, 아바이(Abai).


처음에는 단순히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이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공무원교육기관 앞에 이 인물의 동상이 서 있을까.

군인도, 정치가도, 독립운동가도 아닌 인물이 말이다.


궁금증은 숙소로 돌아온 뒤 검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아바이는 카자흐스탄에서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 배우는 인간의 모델로 여겨지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바이 쿠난바예프는 1845년에 태어나 190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던 시기의 카자흐 사회는 전통적인 유목 질서 위에 놓여 있었고, 동시에 러시아 제국의 영향이 깊어지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 앞에서 두려움에 머물거나, 반대로 아무 고민 없이 외부의 질서를 받아들이려 했다.


아바이는 이 두 태도 모두를 경계했다.

그는 전통을 무작정 지키자고도, 서구를 무작정 따라가자고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 발 물러서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배우지 않는가?”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왜 배우려 하지 않는가?”


젊은 시절의 아바이는 사실 정치와 행정의 세계와도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유력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지역 분쟁을 조정하고 행정 업무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이 역할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제도나 권위로는 사람을 바꿀 수 없고, 문제의 뿌리는 결국 사람의 태도와 사고방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나 글을 쓰고 사유하는 삶을 택한다.

그가 남긴 《아바이의 말들(지혜의 말들)》에는 교육과 학습에 대한 고민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아바이가 보기에 교육의 가장 큰 적은 가난이나 환경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지식이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배우는 일을 귀찮아하고 익숙함 속에 안주하는 태도였다.


그에게 배움이란 출세를 위한 기술이 아니었다.

배움은 타인을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훈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식과 도덕을 분리하지 않았다. 배운 사람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지식인은 사회에 해가 된다고 보았다.


아바이는 외국어와 외부 지식의 학습에도 적극적이었다. 러시아 문학과 사상을 카자흐 언어로 옮겼지만, 그 목적은 서구화가 아니었다. 외부의 지식을 통해 자기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한 교육이었다.


이 지점에서 APA 앞의 동상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APA는 단순히 행정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곳이다. 그런 기관의 상징으로 아바이가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이 아니라 사유를, 명령이 아니라 책임을 강조했던 인물.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자질을 상징하는 이름이 바로 아바이였을지도 모른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아바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다.

카자흐어에서 ‘아바이’는 조심하다, 신중하다, 깊이 살피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생각 없이 행동하지 말고, 한 번 더 돌아보고, 책임 있게 판단하라는 의미다.

공무원교육기관의 상징으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출장 일정은 끝났지만, APA 앞에 서 있던 아바이의 동상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과거의 인물을 기리는 조형물이 아니라, 지금도 이 나라의 공직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충분히 신중한가.

당신은 계속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지식은 책임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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