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교사의 공존

애니 설리번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

by 쑥갓선생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습 패턴을 분석하고, 교사는 데이터를 통해 수업을 설계하며, 교실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학습자의 강점과 약점을 찾아내고, 부족한 부분을 자동으로 보완하며, 때로는 교사보다 더 정확하게 학습자의 성취를 예측한다.

겉으로 보면, 교사는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대일수록 교사의 존재는 더 분명해지고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맞춤형 교육은 대부분 ‘효율화된 경로’를 제시하는 수준에 머문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 풀이에서 학생의 오답 패턴을 분석해 유사한 유형을 추천하거나, 언어 학습에서 학습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큐레이션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기능은 분명 학습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인다.

그러나 그 어떤 알고리즘도 ‘왜 이 학생이 지금 멈춰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AI는 학습의 ‘결과’를 다루지만, 교사는 학습의 ‘맥락’을 다룬다.


학생이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틀리는 이유는 단순히 개념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 뒤에는 피로, 불안, 혹은 자존감의 문제처럼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요인이 숨어 있다.

AI가 그 데이터를 보지 못하는 건 기술의 미성숙 때문이 아니라, 감정과 경험이 본질적으로 데이터로 표현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에게 애너 설리번이 단순한 교사가 아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녀는 켈러의 지식을 설계한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발견하도록 옆에서 기다려준 사람이었다.

AI는 설리번처럼 학생의 내면을 ‘기다릴’ 수 없다.

그건 속도와 효율이 아닌 존재의 리듬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AI의 한계와 교사의 역할이 분명히 갈린다.

AI가 학습 경로를 제시하는 순간에도, 교사는 여전히 그 길을 걷는 이유를 묻는 존재다.

AI가 추천한 ‘최적의 루트’가 항상 ‘올바른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AI는 방향을 계산하지만, 교사는 방향을 의미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AI가 교사를 대체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감정적 주장일까?

아니다.

그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고유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AI는 교사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다만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를 대신할 뿐이다.

반대로, 인간 교사는 그 덕분에 오히려 더 인간적인 영역 — 공감, 해석, 관계, 의미의 연결 — 으로 되돌아간다.


AI가 행정과 평가를 대신할 때, 교사는 학생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에서 학습의 진짜 단서를 읽어낼 수 있다.

AI가 객관적 진단을 제공할 때, 교사는 그 진단의 해석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이건 교사의 퇴보가 아니라 교사의 진화다.


결국,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서

배움의 이유를 학생과 함께 찾는 일로 옮겨가고 있다.

AI는 교사의 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오히려 교사가 조금 더 학생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 덕분에 교사는 평가와 행정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내면을 바라보는 진짜 교육의 자리로 돌아온다.

AI는 교실의 중심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또 하나의 손길이 될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NEIS가 죽어야 한국 교육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