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S가 죽어야 한국 교육이 산다

영국 에듀테크 산업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나

by 쑥갓선생

영국은 현재 유럽 에듀테크 산업의 중심지다. 유럽 전체 에듀테크 기업의 25%가 영국에 있으며, 2019년 영국 에듀테크 기업의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액은 전년 대비 229% 증가한 4억 6,800만 달러로, 유럽 전체 투자의 73%를 차지했다. 1,200여 개의 에듀테크 기업이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솔루션을 학교 현장에 공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성과가 의도된 산업정책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0년 보수당 정부가 금융위기 이후 긴축재정을 추진하면서 교육 예산 집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시작이었다. 중앙정부가 대규모 교육사업을 직접 집행하는 대신, 예산을 각 학교에 직접 배분하고 학교가 자율적으로 집행하도록 했다. 아카데미 학교 제도를 통해 학교들은 교육과정 운영권, 학사일정 결정권, 교직원 채용권뿐 아니라 예산 운영의 자율권까지 갖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전국 3만여 개 학교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교육 솔루션을 선택하는 시장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이 각기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 솔루션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학교 단위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중소 에듀테크 기업들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학교 현장의 구체적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민첩한 생태계가 조성된 것이다.


한국의 선택: 거대 시스템인가, 생태계인가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가 교육 혁신을 시도할 때마다 '대규모 국가 단위 시스템 구축'이라는 익숙한 경로를 선택해왔다. NEIS(전국교육행정정보시스템)가 대표적 사례다. 2003년 도입된 NEIS는 전국 모든 학교의 학사행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졌고, 실제로 행정 효율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우리 에듀테크 산업에 미친 영향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NEIS 도입 이후 한국의 학사관리 시스템 시장은 사실상 소멸했다. 민간 기업이 학교 현장에 학사관리 솔루션을 공급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학사관리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관련 기술과 인력의 축적도 중단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NEIS는 최근의 AI 기술과 결합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고,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인해 혁신적 시도 자체가 제약받는다. 만약 민간이 개발한 학사관리 시스템이 각 학교에 있었다면, 국제 이러닝 표준(예: IMS Global의 LTI, xAPI 등)을 활용해 필요한 데이터만 안전하게 공유하면서도 AI 기반 맞춤형 학습, 학습 분석 등 첨단 기능을 통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환경을 구축하지 못했다.


NEIS 사례가 주는 교훈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글이 NEIS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NEIS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시스템이며 많은 교육행정 담당자들에게 유용한 도구다. 문제는 NEIS와 같은 방식, 즉 '정부가 단일 거대 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학교에 일괄 적용'하는 접근법이 에듀테크 생태계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이다.


이러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대기업 SI 업체 한두 곳만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수백억, 수천억 원 규모의 국가사업은 대기업만이 수주할 수 있고, 중소 에듀테크 기업들은 하청업체로 전락하거나 아예 시장 진입 기회를 잃는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가능한 생태계 대신, 소수 대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경직된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

정부는 현재 소버린 AI, AI 디지털 교과서 등 야심찬 교육혁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다시 거대한 국가 단위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영국처럼 생태계를 조성할 것인가.


영국의 사례는 명확한 교훈을 준다. 정부의 역할은 특정 솔루션을 개발해 전국에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자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학교 단위 예산 자율성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각 학교가 에듀테크 솔루션 구매 예산을 직접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공조달 체계를 개선해 중소 에듀테크 기업도 학교에 직접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국처럼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NEIS의 차세대 버전은 '폐쇄형 단일 시스템'이 아닌 '개방형 플랫폼'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NEIS가 보유한 교육 데이터를 민간에게 안전하게 개방하고, 표준화된 API를 통해 다양한 에듀테크 기업이 혁신적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학습 분석, AI 맞춤형 교육, 진로 상담, 학부모 소통 등 다양한 서비스가 NEIS 데이터와 연동되어 작동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는 모든 기능을 직접 개발하는 대신, 핵심 데이터 인프라와 API를 제공하는 '플랫폼 제공자'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넷째, 데이터 표준화와 상호운용성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단일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다양한 민간 솔루션들이 안전하게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표준과 프레임워크를 제공해야 한다.


다섯째, 시범사업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특정 솔루션 하나를 선정해 전국 확대하는 방식 대신, 여러 솔루션이 경쟁하고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에듀테크 마켓플레이스'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자

만약 이번에도 이전 정부들의 시행착오를 반복한다면, 한국 에듀테크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회복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AI 시대의 교육혁신은 단일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다양한 기업이 각기 다른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경쟁하며 혁신하는 건강한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영국이 보여준 것처럼, 때로는 중앙의 통제를 줄이고 현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더 큰 혁신을 만들어낸다. 신정부가 에듀테크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생태계를 조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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