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배움과 학습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해하는 인간에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by 쑥갓선생

한 교육 전문가가 최근 이런 이야기를 했다. 20년 넘게 같은 과목을 가르쳐왔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학생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과제 제출률은 오히려 높아졌고,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그 과제 내용에 대해 물으면 학생들은 당황했다. "제가 쓴 건데...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2024년 Digital Education Council의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초안 작성(24%)'이다. AI가 구조를 제안하고, 문장을 다듬고, 논리를 보완해준다. 결과물은 학생의 것이지만, 동시에 학생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학생들은 과제를 '완성'했지만, '경험'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본질이다. 배움과 학습이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배움은 언제부터 '과정'이 아니게 되었을까


나는 중학교 시절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단어장에 적고, 가리고, 테스트하고, 틀리면 다시 적고. 그 과정은 지루하고 답답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이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비효율적인' 시간이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전통적으로 배움은 시간을 전제로 했다. 이해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어떤 개념이 자기 것이 되었다. 그래서 배움은 늘 불편했다. 바로 이해되지 않았고, 여러 번 틀려야 했으며, 종종 지루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사고는 자라났다.


MIT 미디어랩의 2025년 연구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ChatGPT를 사용한 학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수동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AI의 제안을 참고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복사-붙여넣기를 했다.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AI 없이는 글을 수정할 수도 없었다.


AI는 이해의 '과정'을 단축시킨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제거해버린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은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복잡한 사고 과정은 정리된 결과로 제시된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배운다'기보다 '받아본다'에 가까운 상태로 이동한다.


학습은 언제부터 '소비'가 되었을까


배움과 학습은 비슷한 말 같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배움이 시간을 들여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면, AI 시대의 학습은 점점 필요한 답을 즉시 소비하는 행위에 가까워진다. 유튜브로 치면, 예전에는 한 시간짜리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면, 이제는 "핵심만 3분"으로 요약된 영상을 본다. 효율적이다. 시간도 절약된다. 하지만 그 3분 영상을 본 사람과 한 시간 강의를 들은 사람의 머릿속은 같을까?


2024년 PMC(PubMed Central)에 발표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AI 기반 개인화 학습 플랫폼을 사용한 학생들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진도를 나갈 수 있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학업 성취도가 향상되었다. 중국 대학생 4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학생들은 AI가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겉으로 보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같은 연구들은 동시에 우려도 제기한다. AI 도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것이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소비된 지식은 빠르게 잊히고, 상황이 바뀌면 다시 호출되며, 깊은 연결을 만들지 않는다. 이때 학습자는 지식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이용하는 사용자'가 된다.


이해는 언제부터 필수가 아니게 되었을까


조금 더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정말 이해해야만 하는가?


과거에는 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해하지 않아도 작동한다. 내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AI에게 물으면 결과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한 스타트업에서 신입 개발자를 뽑았다. 면접 때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켜보니 간단한 버그를 고치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는 면접 준비를 할 때 AI 코딩 도구를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AI가 제안하는 코드를 조합해서 멋진 프로젝트를 만들었지만, 정작 그 코드가 왜 작동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2024년 스마트 러닝 환경 저널에 발표된 체계적 문헌 고찰 연구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AI 대화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학생들의 의사결정 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이 AI가 생성한 추천을 의문 없이 받아들일 때, 과제 수행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이 순간, 교육은 다시 갈림길에 선다. 이해를 끝까지 요구하는 교육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이해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학습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해하지 않는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


이해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효율적이다. 과제는 제출할 수 있고, 보고서는 작성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의 의사결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이해하지 않는 인간은 몇 가지 중요한 능력을 점점 잃는다.


첫째,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MIT 연구에서 교사들은 ChatGPT를 사용한 학생들의 에세이를 "영혼 없는(soulless)" 글이라고 평가했다. 반복적인 표현과 얕은 논증으로 가득했다. 질문은 이해의 경계선에서 나온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여기서부터는 모르겠다는 지점. 그 경계를 인식할 때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AI가 매끄럽게 전체 과정을 제시해주면, 그 경계선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맥락을 의심하는 감각이다. 2024년 여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표절과 학문적 진실성에 대한 우려다. AI가 생성한 콘텐츠가 완성도 높아 보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잊는다.


셋째, 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는 시선이다. AI의 답은 대부분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럴듯함'과 '옳음'은 다르다. AI는 통계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을 제시하지, 반드시 맞는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과정에 머무른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해란 단순히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막혔는지 기억하는 능력이다. AI가 그 막힘을 대신 제거해줄수록, 인간은 그 지점을 경험하지 못한다.


교육은 배움을 보호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2024년 Carnegie Learning의 조사는 교사들이 AI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2%는 AI가 행정 업무 시간을 줄여준다고 답했고, 25%는 개인화 학습 지원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단 1%만이 AI에서 어떤 이점도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AI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AI 시대의 교육은 학습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역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반대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너무 빠른 이해를 늦추고, 너무 쉬운 답을 잠시 보류하며, 과정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한 교육학자의 비유가 적절하다. "근육을 키우려면 무게를 들어야 합니다. 너무 가벼우면 근육이 자라지 않아요.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저항이 필요해요. AI는 모든 저항을 제거해주는데, 그러면 사고의 근육이 자랄 수 없습니다."


다시 묻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AI가 대신해주는 학습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가? 배움의 불편함을 제거한 교육은 과연 교육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AI 시대의 교육은 학습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인간을 키우는 일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Digital Education Council 조사에서 58%의 학생들이 자신의 AI 지식과 기술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고, 48%는 AI 시대의 노동시장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더 놀라운 것은 80%의 학생들이 대학의 AI 통합이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 침묵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다음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간다. 답이 너무 쉽게 주어지는 시대에, 질문은 왜 더 어려워졌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되살리는 것이 왜 중요한가?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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