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AI는 무엇을 대신하고 있는가

지식, 사고, 판단의 자동화

by 쑥갓선생

2025년 6월, MIT 미디어랩의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54명의 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눠 SAT 에세이를 쓰게 했다. 한 그룹은 ChatGPT를 사용하고, 다른 그룹은 구글 검색을 사용하고, 마지막 그룹은 아무 도구도 쓰지 않았다. EEG로 뇌 활동을 측정한 결과, ChatGPT를 사용한 그룹의 뇌 활동이 가장 낮았다. 더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이 점점 더 게을러졌다는 점이다. 결국 복사-붙여넣기에 의존하게 되었고, AI 없이는 비슷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연구를 주도한 나탈리야 코스미나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과제는 완료되었지만, 뇌의 기억 네트워크에는 아무것도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AI가 과제를 대신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가에 있다.


지식은 언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게 되었을까


내가 학창 시절이던 1990년대만 해도 백과사전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두꺼운 책 수십 권이 책장을 채우고 있으면 뭔가 지적인 가정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색인을 뒤져가며 해당 페이지를 찾아야 했다. 그 과정은 번거로웠지만, 동시에 주변의 다른 내용들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이 풍경은 바뀌었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곧바로 답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러 검색 결과를 비교하고, 신뢰할 만한 출처를 구분하고, 필요한 정보를 조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2024년 Digital Education Council의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16개국 3,839명의 대학생 중 86%가 이미 학업에 AI를 사용하고 있다. 그중 66%가 ChatGPT를 주로 이용한다. 가장 흔한 사용 방법은? '초안 작성'이다.


ChatGPT에게 물으면 정제된 답변이 문단 형태로 제시된다. 여러 출처를 비교할 필요도, 정보를 재구성할 필요도 없다. 지식은 더 이상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호출할 수 있는 자원'이 되었다.


사고는 언제부터 '연습'이 아니게 되었을까


상황을 하나 상상해보자.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 가득 증명 과정을 적어나간다. 학생들은 그 과정을 필기하면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간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적어도 '이런 단계를 거쳐 답에 도달한다'는 구조는 머릿속에 남는다.


이제 같은 문제를 AI에게 물어보자. 답은 즉시 나온다. 증명 과정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학생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024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과대학에서 8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항공우주공학과 의료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과였지만, 학생들의 우려는 명확했다.


48.2%가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정확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더 깊은 우려는 따로 있었다. 기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비판적 사고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간 간의 상호작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요약했다. "AI는 학생들에게 즉각적인 답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검증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건너뛰게 된다. 정확성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AI가 틀릴 수 있다'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AI의 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사고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다."


한 항공우주공학과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편했어요. AI가 계산도 해주고, 설명도 해주니까요. 그런데 시험 볼 때 깨달았어요. AI 없이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문제는 AI가 틀린 답을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한 답을 준 것이 문제였다. 학생들은 막히고, 틀리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바로 그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사고력이 길러진다. AI는 그 시행착오를 건너뛰게 만든다.


판단은 언제부터 '위임'되기 시작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AI는 이제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한 기업 인사팀에서 수백 명의 지원서를 검토해야 한다. AI 기반 채용 시스템을 도입하면, AI가 이력서를 분석해 점수를 매기고 상위 후보자를 추천한다. 시간도 절약되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몇 달 후 문제가 생긴다. AI가 높은 점수를 준 지원자들이 실제 업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알고 보니 AI는 '키워드 매칭'과 '이전 합격자 패턴'에 기반해 판단했는데, 이것이 실제 업무 적합성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일상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 식당 어때?" 하고 물으면 AI는 리뷰를 분석해 추천해준다. "이 글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하고 물으면 AI는 수정안을 제시한다.


이것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AI는 우리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판단을 위임한 인간은, 그 판단의 책임과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


교육은 지금, 공백 앞에 서 있다


정리해보자. AI는 지식을 대신하고, 사고를 보조하며, 판단을 제안한다. 그 결과 교육이 전통적으로 담당하던 역할들은 하나씩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 더 많이 아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 AI가 더 많이 안다.

- 더 빨리 푸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 AI가 더 빠르다.

- 더 정확히 재현하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 AI가 더 정확하다.


루마니아 연구가 포착한 학생들의 우려는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기술 의존이 비판적 사고와 인간 상호작용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AI가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문제가 아니다. AI가 너무 좋은 답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교육이 담당하던 많은 역할은 이미 AI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바로 이 공백 앞에서, 우리는 다음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교육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I 시대의 교육은 과거의 교육을 반복하는 훈련 시스템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교육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역할은 무엇일까? 다음 장에서 우리는 더 불편한 질문으로 들어간다. AI 시대에 배움과 학습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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