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너무 쉽게 주어지는 시대의 역설
상황을 하나 상상해보자. 대학원 세미나에서 교수가 복잡한 이론을 설명한 뒤 "질문 있나요?" 하고 묻는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교수가 갑자기 "그럼 이 이론의 문제점은 뭘까요?" 하고 묻는다. 방 안이 조용해진다. 학생들은 내용을 이해했지만, 질문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이것이 AI 시대 교육의 역설이다. AI는 질문을 금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든 무엇이든 물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점점 줄어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질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려워졌다.
질문은 언제부터 '필요 없는 것'이 되었을까
인류 역사에서 질문은 생존과 직결된 행위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왜 해가 뜨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공백에서 태어났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궁금한 게 생기면 며칠씩 답을 찾지 못할 때가 많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봐도 없으면, 아는 어른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질문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내가 정확히 뭘 모르는 거지?" "어떻게 물어야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질문 자체를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으면 관련 정보가 쏟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러 검색 결과를 비교하고, 신뢰할 만한 출처를 구분해야 했다. 질문은 여전히 우리의 능동적 행위였다.
그런데 2023년 ChatGPT가 대중화된 이후,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2024년 Digital Education Council의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16개국 3,839명의 대학생 중 86%가 이미 학업에 AI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AI를 무엇에 사용하는가? 69%가 정보 검색에, 42%가 문법 검사에, 33%가 문서 요약에 사용한다.
무언가를 모르겠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만들기 전에 이미 답을 호출한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답을 얻기 전에 거쳐야 하는 불필요한 단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질문은 왜 답보다 먼저 나오기 어려운가
질문은 원래 불안정한 상태에서 나온다.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고,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 이 불완전함을 견디는 일이 질문의 출발점이다.
2024년 독일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뮌헨 공과대학(TUM)의 Stadler, Bannert, Sailer 연구진은 91명의 대학생에게 과학 탐구 과제를 주었다. 한 그룹은 ChatGPT를 사용하고, 다른 그룹은 Google을 사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ChatGPT를 사용한 학생들은 인지적 부담이 훨씬 낮았다. 과제가 더 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 결과물을 분석했을 때, 추론의 질과 논증의 깊이가 Google을 사용한 학생들보다 낮았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인지적 편안함은 대가를 치른다. LLM은 정신적 노력을 줄여주지만, 학생의 과학적 탐구 깊이를 해친다."
AI는 우리가 막힐 만한 지점을 미리 메워버린다. 조금만 입력하면 상황을 정리해주고, 문제를 정의해주고, 가능한 답의 범위를 제시해준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질문을 '생각해보는 경험' 자체를 건너뛰게 된다. 질문은 나오기 전에 이미 정리되고,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대체된다.
USC 애넌버그 스쿨의 캐런 코박스 노스 교수는 MIT 연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AI와 AI의 잠재력에 대해 매우 흥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항상 가졌던 질문은, 사람들이 문제 해결이나 이슈를 생각하는 데 AI에 의존하면 비판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질문은 왜 더 어려워졌는가
더 복잡한 문제도 있다. AI는 질문을 대신 만들어주기도 한다. 에세이를 쓰려고 주제를 입력하면 "이 주제에 대해 이런 질문들을 탐구해볼 수 있습니다"라며 목록을 제시한다.
겉으로 보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AI가 만들어주는 질문은 대개 이미 정답의 범위 안에 있다. 그 질문은 체계적이지만, 체계를 흔들지는 않는다. 예측 가능한 질문, 교과서적인 질문, 안전한 질문들이다.
2024년 교육 분야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것이다. ChatGPT가 학생들에게 빠른 답을 제공하면서 더 깊은 탐구와 발견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질문은 정보의 부족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보가 충분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불편함에서 나온다.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의심, 시스템이 전제하는 가정에 대한 위화감.
이런 질문은 빠른 답, 정리된 설명, 매끄러운 요약 속에서는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질문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얕아질 위험이 더 크다.
질문하지 않는 인간은 무엇을 신뢰하게 되는가
질문이 줄어들 때, 인간은 다른 것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시스템이 제시한 답, 평균적인 선택,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 이것들은 대부분 합리적이고 안전하다.
2023년 IE 인사이트의 엔리케 단스는 ChatGPT에 대해 이렇게 썼다. "ChatGPT로 검색하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몇 단락을 받는다—그리고 이 답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확실히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Google 검색 페이지의 첫 번째 결과를 복음처럼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Google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ChatGPT에 대한 반응을 상상해보라."
2024년 PMC에 발표된 연구는 이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ChatGPT를 사용한 학생들 중 일부는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질문 없이 받아들였고, 이것이 과제 수행에서 오류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과도한 의존은 사용자가 AI가 생성한 추천을 질문 없이 받아들일 때 발생하며, 이는 의사결정 맥락에서 과제 수행의 오류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질문은 본래 "이게 정말 맞는가?"라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 감각이 사라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시스템이 제공하는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의 부재는 단순한 지적 문제가 아니라, 자율성의 문제가 된다.
교육은 질문을 가르칠 수 있을까
여기서 다시 교육으로 돌아온다. 교육은 오랫동안 '정답을 묻는 질문'을 가르쳐왔다. 시험 문제처럼, 이미 답이 정해진 질문들.
하지만 AI 시대에 더 필요한 질문은 다른 종류다. 아직 문제로 인식되지 않은 것을 문제로 만드는 질문, 불편함을 언어로 붙잡는 질문, 시스템이 전제하는 가정을 흔드는 질문.
이런 질문은 매뉴얼로 가르칠 수 없고, 정답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왜냐하면 질문은 인간이 시스템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게 만드는 마지막 장치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게 생기면 바로 ChatGPT에 물어요. 그럼 깔끔하게 정리된 답이 나오죠.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해요. AI가 그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요즘 제가 하는 일은 답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답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키워주는 거예요. '이 설명에서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아?' '이게 정말 전부일까?' 이런 질문들이요. 힘들어요. 시험에 나오지도 않고, 성적으로 측정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안 하면, 아이들이 평생 시스템이 주는 답만 받아먹고 살 것 같아요."
질문을 되살리는 것이 왜 중요한가
2024년 여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AI는 교육에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도전과제도 제시한다는 것이다. 기술 과의존, 비판적 사고 감소, 학문적 부정행위의 위험이 그것이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AI는 제안할 수 있습니다.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질문이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Frontiers in Artificial Intelligence의 연구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학생들은 AI가 학습을 개인화하고, 글쓰기, 아이디어 생성,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지만, 동시에 정확성, 프라이버시, 윤리, 개인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ChatGPT 쓰면 편해요. 빠르고 정확하니까요. 그런데 가끔 무서워요. 제가 정말 아는 건지, 아니면 ChatGPT가 아는 건지 헷갈려요. 시험 볼 때 ChatGPT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느낌?"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진짜 불안이 있었다.
다시 묻게 된다
AI 시대에 질문이 어려워진 이유는 역설적이다. 답이 너무 쉽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질문을 만들 시간도, 혼란을 견딜 이유도, 불편함을 붙잡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질문이 이렇게 어려워진 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보호하지 않는 교육은 과연 교육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이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